유기열의 씨알여행233산초나무2-보시(布施)의 상징, 베풂의 표상(表象)
산초나무 1개 암꽃은 완전히 익으면 3개의 빨간 열매와 3개의 검은 씨를 생산한다. 각 열매는 2조각으로 벌어지며, 이때 씨가 떨어져 나오거나 일부는 열매 위 끝에 붙어 있기도 한다. 씨는 마르기 전에는 윤기가 나고 흑진주처럼 빛나기도 한다. 그래서 열매가 익어 벌어지는 초기의 산초나무 열매를 보고 있으면 빨간 열매와 검은 씨로 만든 멋진 브로치(Brooch) 같다.
◼꽃잎이 떨어진 암술: 암꽃은 꽃가루받이(Pollination)가 끝나면 꽃잎이 떨어지고 암술만 남는다. 이때 눈(肉眼)으로 외관을 보면 씨방은 겉에 3개의 세로로 된 골이 있을 뿐 한 몸처럼 보이며, 암술대는 1개로 되어 있고, 암술머리는 3개로 갈라져 있다.
◼어린 열매의 횡단면(橫斷面): 어린 열매를 옆으로 잘라 횡단면을 보니 3개의 씨방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3개의 심피(Carpel)로 이루어진 암술의 씨방이 외관상으로는 하나로 보이지만 완전하게 한 몸이 안 되고 나누어져 있다는 뜻이다.
◼열매: 암꽃 1개에 3개의 열매가 대부분 하늘을 보고 달린다. 자료에는 열매가 익으면 3갈래로 갈라진다고 되어 있으나 열매는 3개가 달리고 1개 열매는 껍질이 2조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열매가 3갈래로 갈라지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물론 생육조건이 안 좋아 3개 열매가 완전히 여물지 않으면 1~2개가 달리거나 익다만 쭉정이 한두 개가 좁쌀처럼 달려있기도 하다.
열매 모양은 둥글고 초기에는 녹색이며 익어가면서 황록색으로 되다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완전히 익으면 빨간색, 암적색이나 적갈색이 되고 오래되면 암갈색으로 된다. 겉에는 1개의 이음 선이 있고 얕게 패인 홈과 아주 작은 옅은 황록색 반점이 많아 확대해보면 곰보 같다. 크기는 3.5~4.5mm이며 광택은 없다. 마른 열매는 물에 뜬다.
열매자루는 붉고 2~5mm로 짧다. 열매껍질은 0.3mm이하로 얇으며 딱딱하다. 열매껍질을 씹으면 꺼칠한 느낌이 들지만 고소하고 매운 듯한 향이 났다.
불그레하게 익은 열매를 따다가 집에 놓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러 개의 열매가 껍질이 벌어져 까만 씨가 얼굴을 내밀거나 껍질 끝에 달려 반짝이고 있었다. 열매 껍질의 맥이 실처럼 씨와 열매껍질을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맥은 떨어져 나온 씨에 실처럼 달려있고, 씨에 맥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은 열매껍질에 맥이 붙어 있다. 이 맥(脈)은 열매와 씨를 이어 고정시키며 양분과 수분의 통로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씨: 1개 열매에 1개 씨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암꽃 1개는 3개 열매와 3개 씨를 생산한다. 열매가 벌어지면 씨는 밖으로 떨어지거나 갈라진 열매껍질 한 쪽 위 끝에 달려 있기도 한다. 그래서 새들의 눈에 잘 띈다.
씨의 모양은 둥글고 색은 검고 크기는 지름이 2.5~3.5mm정도다. 색은 초기에는 희거나 연한 녹색이며 열매가 익어 벌어질 때 나오는 씨는 까맣고 윤기와 광택이 있어 빛나는 흑진주 같다. 비중은 적어 물에 뜬다.
마른 씨를 이빨로 깨물면 톡 소리와 함께 깨지고, 씹으면 누룽지(깜밥)를 씹는 소리가 나며 고소하다. 약간 매운맛(?)도 난다.
인간 식생활에서 산초장아찌는 고급반찬으로 애용되고, 산초열매가루는 향신료로도 많이 쓰인다. 열매와 씨는 새들도 무척 좋아한다. 새들의 먹이로 이만한 것도 흔하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벌어진 열매껍질 끝에 마술사처럼 올라와 씨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 새들은 이들 열매를 가만 두지 않는다. 이렇게 새를 유혹하여 산초나무 씨는 멀리 멀리 더 좋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기타: 꽃에 개미들이 득실거리는 것을 보면 개미가 산초나무의 꽃가루받이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무는 일반적으로 한 송이 꽃은 한 개의 열매를 만든다. 그래서 1개의 꽃이 진 자리에는 1개의 열매가 달린다. 그런데 산초나무는 일반 나무와 다르게 한 송이 꽃이 지면 그 곳에 3개의 열매가 만들어진다. 자료에는”산초나무 열매가 익으면 3개로 갈라지거나 열매 껍질이 3개로 갈라진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산초나무 열매는 3개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암꽃 한 송이는 3개 열매를 만들고, 1개 열매는 2조각으로 갈라진다. 3개의 열매는 거의 붙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하나의 열매가 3조각으로 갈라져 벌어지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어, 그런 혼란을 가져온 듯하다.
산초나무는 보시(布施)의 상징, 베풂의 표상 같다. 사람에게는 반찬, 향신료, 약제를 주고, 벌레와 새에게는 자기 몸인 잎과 열매를 먹이로 주고 개미에겐 꽃 속의 꿀을 준다. 반면에 개미는 산초나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고 새는 씨앗을 멀리 옮겨 산초나무의 생존과 번식을 도와주면서 공존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며 으스대는 사람은 얻기만 하고 산초나무에게 무엇을 주는지 아직 모르겠다. 이름이라도 불러주고 관심이라도 가져주었으면 한다.
필자 주
1. 암술은 3개의 심피로 이루어진 겹심피(複心皮)이지만 3개의 심피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3개로 분리되어 있는 이생겹심피(離生複心皮, Apocarpous)로 되어 있다. 그래서 3개의 열매가 열리고, 각 열매에 1개의 씨가 들어 있다.
2. 여름날 산초나무를 만나면 거기서 호랑나비 애벌레, 에사키뿔노린재 등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산초나무 잎을 먹이식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으면 애벌레의 머리를 작은 나뭇가지 등으로 살짝 건드려 보라. 그러면 노란 색의 뿔을 내민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공격하는 대상에 크게 보이고 겁을 주기 위해서다. 아이들과 같이 하면 아주 좋아하고 신기해한다. 그런다고 세게 때려서 죽이면 안 된다.
3. 산초(山椒)나무는 열매가 많이 달려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모기향이 없던 시절에는 잎을 망에 담아 천정에 매달아 놓아 모기를 쫓아내기도 했다. 또한 가시가 날카롭고 냄새가 나 귀신이 싫어한다 하여 병마와 악귀를 쫓는 방편으로 집 주위에 심어 생울타리를 만들거나 노인들이 지팡이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조상들의 생활은 과학적인 근거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식물의 성분 분석기술이 발달한 근대에 이르러 산초나무에는 산쇼올(sanshool)이 많이 함유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이 산쇼올은 마취작용과 살충효과가 있어서다. 오늘날에도 산초나무 잎과 열매로 만든 가루는 음식물의 부패나 식중독을 막고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없애는 데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