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꿈이고 환상이다, 그리고 이룰수 없는 '장벽'에 대한 도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단언컨대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파리의 연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2004년 대한민국에서 '파리의 연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방영했던 이 드라마, 이 드라마의 극적 요소와, 캐릭터와 주인공의 서사는 2022년 지금 봐도 충분히 화려하고 세련됐다. 시청자의 니즈를 파악할 줄 아는 <김은숙 작가>의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생각하는 흥행 포인트와 기억나는 재미있는 장면에 대해 포스팅을 하겠다.
1. 신우철 감독의 트렌디한 연출법
1992년 <여명의 눈동자>가 해외로케이션의 시초 작품이다. 92년 이후에도 많은 드라마에서 해외 배경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가 나왔지만 <파리의 연인>처럼 파격적이지는 않았다. 제작비 문제로 자주 무산됐던 '해외로케', 2003년 태양의 남쪽을 성공시킨 김은숙 작가와 강은정 작가는 <파리의 연인>의 1~4회 풍경을 프랑스 파리의 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담으면서,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2004년 <파리의 연인>을 시작으로 입봉한 신우철 감독의 진가를 찾아 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파리에서 우연한 기회에 첫 만남을 가지게 되는, 기주와 태영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러한 파리 로케이션의 아름다운 전경은, 사랑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2. 동등한 선상에서의 <파트너쉽>
'2004년 SBS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과, MBC 황태자의 첫사랑 김유빈간의 비교분석'
21세기, 점차 신장되는 여권에 비추어 볼 때 '신데렐라' 스토리는 왠지 구시대적인 유물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리의 연인>은 57.8%라는 시청률로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신데렐라 소재라는 고전적이고 진부한 스토리임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2004년 여름, 동시간대 방영됐던 경쟁작 <황태자의 첫사랑>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작품 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내노라하는 스타급 연기자를 기용했음에도 하나는 대박을, 하나는 올림픽을 빙자한 조기종영이라는 판이한 결과를 얻게 됐다. <황태자의 첫사랑>의 실패요인은 신데렐라라는 극적인 구조를 변주없이 그대로 차용했다는 것에 있다.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은 유복하지 않은 집안에서 어렵게 살지만 경제적인 열등감을 극복 할 수 있는 주체성과 당당함이 돋보였다. 이게 바로 신데렐라 드라마의 <변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격한 경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은 당당히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자 인물로 묘사됨으로써 기존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신데렐라에서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춘향이로 승격 할 수 있었다. 한편 <황태자의 첫사랑>의 김유빈은 유복하지 않은 집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적인 결핍에 허덕이며 산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그런 경제적 열등감이 자신감 내지 당당함으로 승화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더이상 <신데렐라>드라마에서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은 효용가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황태자의 첫사랑>의 유빈도 밝고 명랑하며 의리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면이 왕자님의 관계에서 발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파리의 연인>에서는 기주와 수혁의 삼각관계가 있었음에도, 태영은 시종일관 기주를 사모하는 마음을 멈추지 않았던 반면 <황태자의 첫사랑>에서는 유빈이 오랜갈등을 정리하고 한명의 황태자를 선택하는 밑밑한 전개 구조는 신데렐라의 설렘도 춘향이의 쟁취도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가 <신데렐라>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신분상승의 욕구와 유전자에 내재된 과시욕을 적절히 해소시켜준다는 것에 있다. <파리의 연인>은 신데렐라 드라마의 환상과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주면서 고전 신데렐라가 갖지 못한 능동성과 주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바로 파리의 연인이 큰 사랑을 받을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3. 일과 사랑을 동시에, 파격적인 '한기주'
다른 캐릭터와 차별화 된, 센세이션한 재벌 캐릭터
2004년 열풍을 이끌었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풀하우스>의 공통점은 남자 주인공이 재벌가의 후계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 하기를 싫어하고 후계자가 되기를 싫어하는 다른 재별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실제 재벌 후계자'같은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일에 열중하는 현실적인 재벌 2세의 모습을 비추었다. 다른 드라마의 재벌가 이야기는 결국 '신분상승의 욕구와 운명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한 클리셰였다면 파리의 연인에서는 태영-기주의 사랑 외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경영난, 주주총회 많은 것을 리얼리티하게 다뤘다. 다른 재벌가 캐릭터와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기주는 일과 사랑에 진중한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일에만 열중하던 '사막같은' 한기주, 사랑표현에 서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기주를 강태영이라는 캐릭터가 변화시킨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비록 강태영이 경제적인 결핍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성숙한 감정과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기주를 성장시켰다. 근엄한 위치에서 지시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타자를 위한 삶을 살아왔던 기주에게 태영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의 자유로운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서사는 꽤나 설득력있고 로맨틱하다.
4. 김은숙 작가의 핑퐁식 대사와 단편적 캐릭터, 유기적 서사의 조합
파리의 연인의 캐릭터는 꽤나 단편적이다. 선과 악이 뚜렷한 사람들, 하지만 그런 단편적인 캐릭터가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보는 TV 드라마가 전문적이고 어렵다면 시청자들을 유입하기 힘들다. <파리의 연인>은 작가의 언어유희로 현실의 고달픔에 지쳐버린 많은 사람들을 현실에서 격리시키고, 극의 즐거움을 부여하는데 성공했다. 1시간이라는 한 회 방영 시간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하는 TV드라마 구조상 파리의 연인의 특유의 말장난이 시청률 상승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게다가 태영-기주 두 사람의 사랑의 유기적 서사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연인>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 매 회 나오는 명대사는 가슴을 웅장하게 하고 재미있는 핑퐁 대사들은 드라마의 재미를 한 층 더 높여주었다. 조연들까지 의미있는 역할과 대사를 주어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히는듯한 생생함을 느낄수 있었다. 과연 어떤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는 중이다. 필자도 2015년부터 수많은 드라마를 봐왔지만 좋은 드라마의 기준을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작품성은 꼭 시청률과 반비례 하는 것인가, 신데렐라의 드라마는 나쁜 것인가? 어렵고 전문성 있는 드라마가 좋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행복을 준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드라마가 아닐까? 인간은 언제나 이상을 꿈꾸며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될수록 부와 명예에 대한 욕구와 동경은 계속된다. 이런 신데렐라 드라마를 좋아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내재된 신분상승의 욕구 때문이기에 우리나라 드라마 클리셰는 꾸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