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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Oct 12. 2020

가끔은 꽃길도 걷게 해 줄게

아빠. 아빠 엄마가 좋아요? 엄마가 좋아요?

"아빠. 아빠 엄마가 좋아요? 엄마가 좋아요?"

공부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9살 막내아들이 쪼로록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물어본다.


"응? 뭐라고?"

"아 그러니까 아빠 엄마가 좋아요? 아님 엄마가 좋아요?"


아이의 말인 즉. 나의 엄마인 할머니가 좋으냐? 아니면 자신의 엄마인 나의 와이프 중 누가 더 좋냐는 그런 이야기다.


"왜?"

"그냥 궁금해서요."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너네 엄마"라고 대답해 준다.


"와. 어떻게 자기 엄마를 더 안 좋아할 수 있어요? 아빠는 할머니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둘 다 너무 좋은데, 굳이 고르라면 엄마가 더 좋아."

"아빠. 할머니 배신하는 거예요?"

"배신 아니야. 아빠는 둘 다 너무 좋아."


아이의 생각에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한데, 아빠인 내가 나의 엄마인 할머니보다 엄마가 더 좋다고 말하니 그게 좀 신기한가 보다.


"그런데 왜 엄마가 더 좋아?"

"왜냐하면 아빠는 할머니를 골라서 태어나진 못했지만, 엄마는 아빠만 믿고 아빠하고 결혼했잖아. 그래서 아빠는 엄마가 더 소중하고 좋고 그래."


"아 그래? 알았어."

아이가 아빠의 말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 하나만 보고 힘든 나와의 결혼생활을 결정해 준 와이프에게 새삼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여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이 마냥 쉽고 즐겁지 만은 않았을 거란 걸 잘 알아.

오히려 당신 혼자 가는 길이 훨씬 더 편하고 좋은 길이였을지도 모르지.


여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나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어렵고 힘든 결정을 해 줘서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해.


나 하나만 약속해도 될까?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에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꽃길도 걷게 해 줄게.


<여보.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은 꽃길도 걸으며 살아요>


'여보. 고마워. 그리고 난 정말 행복해.'



덧대는 글


둘째가 쪼르륵 거실로 달려가더니 나에게 했던 질문을 엄마에게도 한다.


"엄마. 아빠는 할머니보다 엄마가 더 좋대.

엄마는 아빠가 좋아? 엄마 엄마가 좋아?"


"음..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엄마도 아빠가 더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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