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리는 사람의 비유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태복음 13장)를 재해석한 우화입니다."
좋은 씨:예수님의 생명
농부:예수님
땅:마음
게으른 농부:거짓 종교 지도자
슈퍼시드: 세속화된 복음, 지식으로의 복음
1. 버려진 땅
2. 농부
3. 뿌리
땅이 있었어요.
땅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 고요했어요.
하지만 흙 속에는 봄을 기다리며 잠든 씨앗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어요.
따스한 햇살이 내려오고 포근한 바람이 살랑거리는 봄이 되었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보드라운 땅을 뚫고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어요.
'쏘옥 쏙'
땅을 뚫고 나온 싹들은 며칠 사이 마디 하나씩 더 생기며 거침없이 자라났어요.
남풍을 타고 날아온 홀씨들과 새들의 깃털에 묻어온 작은 생명들도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동글동글 말려있던 잎들이 기지개를 켜자 잡초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어요.
부드러웠던 줄기에는 날칼로운 돌기가 생겨났고 뿌리 끝은 독수리 발톱처럼 땅속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억센 여름 햇살의 기운을 먹고 자란 잡초들은 갈수록 더 억세고 강해졌어요.
가을이 되자,
이파리 밑으로 붉고 주황빛의 열매가 맺혔어요. 화려한 붉은빛을 뽐내는 열매를 보고 새들과 벌레들이 몰려왔어요. 하지만, 한입 베어 물었다가 떫고 쓴 맛에 얼굴을 찌푸렸어요.
화가 난 그들은 잎을 쪼아댄 뒤, 똥을 잔뜩 남기고 떠났어요.
배설물과 구멍 난 잎, 뭉개진 열매들이 쌓인 곳에는 파리떼와 해충들만 모여들었어요. 나무를 갉아먹으며 병을 옮기고 다니는 벌레들로 연약한 나무는 썩어 가기 시작했고 잎들은 누렇게 타들어 갔어요.
억센 풀들은 더 뾰족한 가시를 내어 자신을 보호했어요. 연약한 가지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덩굴로 자라났지만 결국 얽히고설켜 서로를 힘들게 했어요.
"숨 막혀, 저리 가"
"나도 네가 좋아서 붙어있는 건 아니거든."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되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와서 음식물쓰레기를 쏟아놓고 사라졌어요.
그날 이후,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가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부턴 대형 트럭이 와서 공사 폐기물, 고장 난 가전제품을 쏟아놓고 가버렸어요.
고요했던 땅은 어느덧 버림받은 것들의 무덤이 되어버렸어요.
진득하고 끈끈한 폐식용유와 철근이 박힌 시멘트 덩어리에 눌려 땅은 숨조차 쉬기 힘들어졌어요.
'쉬익-쉭 , 야아-옹'
길 잃은 동물들이 들어왔다가 유리 조각에 살을 베어 울부짖었고, 다시 나가지 못한 동물들의 사체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썩어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사람들도 이곳 죽음의 땅을 피해 먼 길을 돌아다녔어요.
땅은 갈라진 틈 사이로 신음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살고 싶어요… 제발, 누가 저 좀 도와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소리가 들렸어요.
저벅저벅, 쾅쾅쾅.
"이건 분명 인간의 소리야. 누가 또 쓰레기를 싣고 왔나?"
또 다른 고통이 올까 두려워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레 지켜보았어요.
그의 모습은 쓰레기를 버리던 회색옷의 사람들과는 달랐어요.
그는 멜빵으로 된 청바지에 튼튼한 작업화를 신고 있었어요. 밑창의 틈새마다 흙이 남아있는 신발에는 오랜 기간 땅을 밟아 온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어요.
짚으로 엮은 커다란 챙모자 아래로 햇볕에 바랜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고, 걷어붙인 셔츠 아래로 단단한 팔뚝의 힘줄이 드러났어요. 손바닥과 손등에는 무언가에 깊이 찔린 듯한 오래된 상흔이 있었어요.
처음 보는 차림의 그 사람이 망치를 들고 여기저기에 말뚝과 팻말을 세웠어요.
"경고. 이 땅은 주인 있는 땅이니 함부로 들어오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주인 백."
다음날, 그는 새벽부터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어요. 동이 트기도 전부터 밭에 나와서 깜깜한 밤까지 땀을 흘리며 쓰레기를 치워나갔어요.
고장난 피아노, 찢어진 시험지, 깨진 술병...
이마에서는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하얀 티셔츠에는 땀에 밴 소금기가 얼룩처럼 퍼져있었어요. 포클레인으로 한꺼번에 쓸어 담을 수도 있었지만, 흙 한 톨을 귀하게 여기는 그는 손으로 흙을 털며 하나씩 정리해 나갔어요.
쓰레기가 거의 치워지자 , 이번엔 동물들의 사체와 배설물 위에 고운 입자의 흙을 덮었어요. 그건 멀리서 가져온 미생물이 풍부한 붉은빛의 흙이었어요.
"좋은 거름이 만들어지겠군."
부지런한 그는 매일같이 수레로 흙을 날랐어요. 그는 패인곳을 메우고, 흙을 고르게 덮어주며, 고통받던 땅에 숨결을 불어넣었어요.
여름이 끝나갈 즈음에 악취는 거의 사라졌고, 땅은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어요.
"이제 좀 숨 쉬는 것 같아."
얼마가 지났을까....
농부가 전지가위를 들고 나타났어요.
그는 마치 외과의사처럼, 덩굴을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잘라냈어요.
가시덩굴줄기는 오래된 유착된 조직처럼 들러붙어 있었지요.
이내 그는 뿌리까지 파내기 시작했어요.
흙이 걷히며 가시덩굴의 뿌리가 드러날 때마다
흙 속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어요.
"그냥 가시만 자르면 안 돼요? 너무 아파요! 지금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데 이대로 살면 안 될까요?"
"아프지만 견뎌보자. 이 걸 뽑아야 네가 숨 쉴 수 있어. 이 뿌리들이 너의 생명을 모두 빨아먹고 있거든."
자상하고 부드럽던 농부의 단호한 모습에 땅은 적지 않게 놀랐어요. 하지만 지나간 시간 동안 보여준 농부의 모습을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꽤 오랫동안 농부는 지독한 가시덩굴의 뿌리와 씨름했어요.
삽과 곡괭이를 번갈아 쓰고, 때로는 맨손으로 흙을 파며, 괴사된 조직 같은 뿌리들을 하나씩 끈질기게 뽑아냈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얼굴에서는 끊임없이 땀이 떨어졌고 작업복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어요. 손바닥에는 여러 개의 물집이 잡혔지만 농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드디어 거대한 문어의 다리와 같은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났어요.
'후드득후드득'
파헤쳐진 곳을 어루만지듯 내리는 빗물에 농부의 땀방울도 씻겨 내려갔어요. 농부는 무릎을 꿇은 채 땅에 입을 맞추며 말했어요.
"잘 견뎌 줘서 고마워. "
오랫동안 앓던 사랑니가 빠진 것처럼, 땅은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졌어요.
땅을 위로하는 비는 오랫동안 계속되었어요.
비가 그친 후, 농부는 새끼를 꼬아 만든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어요, 그 안에서 신비로운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어요.
"이제 진짜 시작이야."
농부가 중얼거렸어요.
과연 그 신비한 바구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창작 노트*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죄인일까요?
아니면 죄인이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좋은 씨앗』 1화는
죄성을 지닌 채 태어나
상처와 결핍, 두려움 속에서
자기 중심으로 굳어져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칠어진 밭을 사시고,
치유해 가시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치유와 회복을 거쳐 다시 태어난 땅이
변화해 가는 이야기가
『좋은 씨앗2』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