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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Apr 01. 2016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우디 앨런 감독

 내가 못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가 이름을 기억하는 거다. 특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생각해 내야 할 때, 더욱 곤란해진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좋아하는 감독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있지! 많지! 생각이 안 나서 문제지! 그래 결국 “저 화장실 좀........”이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 와서 측두엽을 몇 차례 쥐어박고 나서야 (측두엽이 어디냐고? 나도 모른다.) 그리운 이름들이 떠올랐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우디 앨런, 필립 가렐, 홍상수, 이준익....... 아.

 변명을 하자면, 요즘 너무 많은 영화를 무작위로 본 것이 화근........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쉼 없이 영화를 보면서 시름시름 앓았다. 작품의 문제라기보다 나의 문제로, 무엇을 보아도 가슴이 뛰지를 않았다. 이럴 때는 역시 우디 앨런이 답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참으로 여러 가지로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니까.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로맨스의 서막을 예고한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다면 이것은 불륜? 아니면 동성애? 아니면 스리....... 

 됐고, 감독의 영화가 줄곧 그래 왔듯,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역시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욕망을 좇아, 제 맘 가는 대로 살고 싶어 용을 쓰는 사람들.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와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는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사람, 비키(레베카 홀)는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는 제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다. 영화 안에서야 인물들의 캐릭터가 명확히 나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가지 캐릭터를 모두 가지고 있거나 셋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대체 ‘욕망’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사전 상에서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으로 정의되어 있다. ‘탐하다’는 말은 꽤나 부정적으로 들린다. ‘욕망’이라는 기호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감성도 비슷하다. ‘욕망을 좇는 일’은 사람들에게 탐탁지 않거나 감추고 싶은 무엇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마법처럼 환상적인 풍경 속에 인물들을 몰아넣고 말이다. 노골적이지만, 불편하지 않다.

"걔 감성 나이는 사춘기야." - 비키(레베카 홀)

 안정적인 삶을 고수하는 비키가 보기에, 순간에 충실하고 욕망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크리스티나의 감성은 사춘기 소녀의 그것이다. 괜히 찔렸다. 그래서 뭐가 잘못됐나? 비키와 크리스티나 중 누구의 가치관이 더 지향할 만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에 관한 것이어야 할 테지만, 결혼 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안토니오에게 흔들리는 비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존재, 욕망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안토니오 세 사람이 함께 사랑을 향유하는 순간이다. 언뜻 비현실적이고 가히 정상적이지도 않은 셋의 관계가 매우 조화롭고 균형감 있게 발전한다.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관계에서 빠지는 순간, 안토니오와 마리아의 관계도 파국을 맞는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다. 안토니오와 마리아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삐걱댈 수밖에 없는 원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욕망은 본디 충동적이기도 잠재적이기도 하다. 사람이 내적 갈등을 겪게 되는 때는, 그것이 충동적인 것이든 잠재적인 것이든 욕망의 존재를 느꼈을 때다. 욕망이 좇는 이상이 현실의 상황과 충돌한다면 내적 갈등은 격화된다. 욕망이 꿈틀거릴 때에 욕망을 직시하고 이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조화롭고 균형 있는 삶을 위해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사랑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싫어 자신의 시를 출판하지 않는 안토니오의 아버지와 우디 앨런은 확실히 다르다. 영화에서 담아내고 있는 모든 풍경에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내 남자의 아내가 좋아>의 배경인 바르셀로나 역시 생동감 넘치고 신비로운 그림으로 묘사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당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 당신,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 모르는 당신, 당신에게 이 영화가 훌륭한 처방이 될 것임을 믿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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