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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Mar 16. 2016

<룸>,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

 납치, 감금, 이어지는 성폭행. 짐작해보려 하는 것이 괴롭다. 마음이 왈칵 튀어나올 듯하고, 눈이 뜨거워진다.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최대한 프레임 밖으로 빼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프레임에서 생략되었다고 해서 조이(브리 라슨)와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이 겪은 끔찍한 일들 모두가 머릿속에서 함께 꺼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무게 중심이 잭과 조이가 룸에서 나온 이후의 상황으로 더 쏠려 있기는 하지만, 조이와 잭 모자가 견뎌온 고통과 피해를 생각하는 일은 탈출 이후 두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결코 그 사건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막 룸에서 나온 조이와 잭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 밀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관찰자나 전달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두 피해자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고민이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다시, 조이와 잭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세상으로 나온 후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두 인물의 애씀이 눈물을 자아낸다. 어머니와 아들 중에서도 특히, 태어난 후 처음 룸 밖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 잭이 혼란을 겪는 모습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잭의 상황이 일상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조금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본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세상에는 볼 게 정말 많아요. 그런데 버터가 발라진 것처럼 넓게 펼쳐져 있어 다 볼 수가 없어요."

볼 것, 느낄 것, 할 것들이 넘쳐나는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허우적허우적 대는 일뿐이다. 화려한 불빛,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 흘러가는 시간. 멀쩡한 세상 속에서 홀로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소외감이 들기도 한다. 잭이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바깥세상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만 거기에 없다. 우리는 정말 진짜일까?”
'힘 셈'을 나누어 쓰는 일

 ‘힘셈’을 나누어 쓰는 것. 세상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찌해야 하는지 잭은 마침내 알게 된다. 다섯 살 꼬마의 말에 서로의 힘셈을 빼앗기 급급한 어른들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세상 안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가진 상처를 보듬고 극복하기만도 버거운 우리에게 타인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존재야만 하는 숙명을 가졌다. ‘함께’를 위해, 쉽지는 않겠지만, 잭이 그랬듯이 자신이 가진 ‘힘셈’을 조금 나누며 살아야 한다. 영화가, ‘고발’보다 ‘치유’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이 역의 브리 라슨이 시상식에 초청받은 성폭행 피해자들을 한 명 한 명 감싸 안아주었던 것도,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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