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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May 15. 2016

<곡성>, 나홍진 감독

 이대로 영화가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빌어도 소용없었다. 이미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사실 알고 있었다. 직감으로 알았다. ‘이렇게 끝나겠구나.’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표현이 정말 제격이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어두운 밤 골목길을 홀로 걸을 때처럼. 어두운 밤, 골목길. 그런 순간에야 말로, 악의 존재를 격렬하게 부정하고 싶은 순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순간. 역설적이게도 그런 순간에 인간은 악의 존재에 대해 가장 믿고 있는 것이 된다. 어딘가에 잠재하고 있는 악.

 이런 이야기, 집어치우고 싶다. 무섭잖아. 나홍진 감독의 전작, 본 적 없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장르 싫어한다. 무서우니까. 근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곡성>을 보아 버렸고, 절대 현혹되지 말라니, 현혹되기 싫어 발버둥이라도 쳐보아야지. 그래서 글로 풀어보련다.

초사실주의

 앞서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빌었던 건, 오로지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끝나버리면, 더럽게 찝찝하잖아.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지나치게 사실적이었고, 게다가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이전 작품들은 모르겠지만, <곡성>은 초사실주의에 가깝다.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어떤 영화들은 극단적인 형식주의 영화이기도 한데, <곡성>은 비 내리는 장면을 실제로 비가 오는 날 찍는 정도였다고 하니 그저 초사실주의 영화로 볼 밖에다. 워낙에 사실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무리다. 예를 들어, 좀비가 그렇다. 좀비야말로 부인할 수 없이 허구적인 설정이다. 그래서 기존의 영화에서는 좀비란 존재들을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왔다. 핏기가 없이 투명한 흙빛의 피부, 초점을 잃은 눈, 처연해 보이는 표정 따위의 모습으로. 헌데 <곡성>의 좀비는 외양만 놓고 보면 사람에 가깝다. 그것도 아주 악에 받친 사람의 모습. 그러니까 마치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곡성이란 마을의 정경이나 사람들의 표정, 굿판을 벌이는 모습, 심지어는 방바닥에 널린 이불이나 베개, 옷가지마저 사실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외지인 역할을 맡았던 쿠니무라 준의 연기는 보는 이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고 숨통을 조일 정도로 압권이다. 쿠니무라 준의 연기와 비교하면 일광 역의 황정민이나 종구 역의 곽도원의 연기는 다소 기능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뤘던 장면은 단연 일광과 외지인이 굿판을 벌이는 장면이 교차 편집된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쿠니무라 준과 황정민의 연기는 사실적인 경지를 초월하여 환상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종구는 악의 실체를 좇는다.

 그래, 이렇게 사실적인 모습으로 극악한 사건들을 펼쳐놓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악의 만행이 끊이지 않는 속에 모든 것이 힘을 잃었다.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신마저도. 영화에서 ‘종구’라는 인물을 내세워 영화가 좇는 것은 오로지 ‘무엇이 악인가’, 즉 악의 실체였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밝히지 못 했다. 악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악이란 것이 그런 듯하다. 매우 가까이 있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겉으로 드러나 있으나 실체는 감추어져 있다. 애초에 영화에서 좇지 않았던 것, ‘악은 어찌하여 악이며, 왜 악이 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지 않고서는 악의 실체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두려울 따름이다.

악은 어찌하여 악이며, 왜 악이 되는가.

 여전히 감독의 전작을 볼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 내놓을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어쩌면 다음 영화는, 이토록 수도 없이 흩뿌려놓은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꾸어줄지도 모른다. 쓰고 보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에 느낀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감독이 다음 영화에서는 더 많은 물음표를 던져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직감. 줄 테면 주라지. 따라가 볼 테다. 

수많은 물음표...... 따라가면 답을 구할 수 있을까.


* 제목, 본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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