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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Oct 28. 2016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 감독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에이리스(시얼샤 로넌)는 두 번 짐을 싼다. 그녀는 고향 아일랜드에서 출발해, 먼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갈 것이다. 처음 에이리스가 짐을 꾸리는 것은 브루클린으로 떠나기 위해서지만, 두 번째로 그녀가 짐을 챙기는 것은 브루클린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얼핏 반복처럼 보이는 이 두 번의 행위는 실은 몹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처음 에이리스가 짐을 쌀 때, 챙길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워낙에 가진 것이 없었고, 또 그녀는,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언제든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짐을 가볍게 꾸렸다. 그녀는 집 떠나기를 두려워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에이리스에게 그녀의 언니 로즈(피오나 글라스콧)는 “너한테 필요한 삶을 내가 사줄 순 없다”고 말한다.

처음 떠날 때, 에이리스는 두려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브루클린에 도착해서도 에이리스는 여전히 어리바리하기만 했다. 무언가에 크게 상심한 사람마냥 늘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깊은 향수의 시름 속에서 그녀를 꺼낸 것은, ‘첫 사랑’이었다. 상대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토니(에모리 코헨). 그는 다른 이를 배려할 줄 알면서도, 솔직했으며, 가끔은 시시한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달콤한 남자였다. 토니를 만난 후, 에이리스는 몰라보게 달라진다. 그녀는 세상을 얻은 사람처럼 밝아졌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겁 많던 소녀가 성숙한 여인이 된 것이다.

향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사랑, 위로.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웃기는 사랑만능주의다. 소견으론, 사랑이 세상의 모든 심각한 것들을 전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든다는 생각은 단지 환상일 뿐이며, 대개의 경우 사랑은 세상의 모든 심각한 문제들을 더 심각하게 만들면 만들었지 나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영화 <브루클린>에서도 명확히 적중한다.
  행복한 날을 보내던 에이리스에게 갑작스레 비보가 날아들었다. 언니 로즈가 죽었다는 것. 혼자 남게 된 어머니가 걱정돼 미칠 지경임에도, 토니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이 역시 미칠 지경이기는 매한가지라 에이리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마침내 아일랜드를 잠시 다녀오기로 마음을 굳힌 에이리스는 토니와 둘 만 아는 결혼식을 올린 후 브루클린을 떠난다.
  토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토록 바라고 그렸던 고향에 돌아왔어도, 에이리스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하기만 하다.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어머니를 얼마간 위로하고 나자,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브루클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런 그녀의 곁에 새로운 남자, 짐(돔놀 글리슨)이 나타났다. 짐을 처음 봤을 때, 에이리스의 눈에 그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블레이저를 입은 여느 아일랜드 남자였다. 에이리스는 짐을 ‘딱딱하고 권위적이며 허세로 가득 찬 존재’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유롭고, 이해심이 깊으며, 유머러스한’ 토니에게 빠져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바다, 브루클린의 바다. 다른 것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상황이 견딜 수 없을 만치 복잡해져 버린 후에, 아일랜드를 떠날 결심을 하고 에이리스가 짐을 싸는 모습은 그녀가 처음 짐을 쌀 때와는 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그녀는 챙길 것이 많아졌다. 어쩌면 정말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될 것이므로, 에이리스는 고향 집 저의 물건들을 하나 둘 챙겨 가방에 담는다. 전처럼 집을 떠나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아일랜드의 집은 더는 집이 아니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에이리스의 집은 이제 브루클린에 있다. 순리(順理)가 자아낸 방황을 모두 겪은 후에, 그녀는 ‘그녀에게 필요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소견을 정정할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만능주의가 우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실로 우스울지라도,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을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다. 사랑에의 기대마저 버리고 나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누군가 사랑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그는 자립할 수 있게 된 것일 테다.

사랑에의 기대마저 없다면.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브루클린>은 사랑이야기인 동시에, 나약하고 어렸던 한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성장 드라마다.

<브루클린>은  나약했던 한 인간의 성장 드라마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또 다시 어리석은 희망이다. 나의 인생이 있을 곳, 오직 나만의 공간은 정말 있을까 하고. 추억은 시리고, 또 아름답다.

추억은 시리고, 아름답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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