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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Oct 13. 2016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필립 가렐 감독

L'ombre des femmes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랑은 배신이었다.

사랑은, 배신.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나의 경우에도 그랬고, 또 나의 경우에도 그랬고, 또 나의....... 영화에서도 그랬다.

마농과 피에르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필립 가렐 감독의 <L'ombre des femmes>은 아주 적확하게 사랑의 진실을 드러낸다. 사랑은 배신이오, 배신.

 마농과 피에르의 이야기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사랑을 느낀다는 건, ‘당신’이 ‘자신’에 우선해도 좋다는 착각 또는 환각의 감상에 빠지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변하면 감상은 깨진다.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보다는 내가 우선이더라.’

'당신'이 '자신'에 우선해도 좋다는 착각 또는 환각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배신의 명료한 정체다. 부부인 마농과 피에르는 각기 다른 사람과 애정 관계로 얽힌다. 마농은 앙리와, 피에르는 엘리자베스와. 마농과 피에르가 부부이므로 서로에 대한 그들의 배신은 ‘불륜’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엇이 불륜일까. 불륜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다. 부부관계에 있는 남녀의 배신이 불륜으로까지 불리는 것은, 부부임을 명시하는 문서 한 장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설명하기라도 한다는 말일까.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마농과 피에르의 반응은 다르다. 피에르는 마농에게 강한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녀를 짐승 같다 느끼며, 감시하고, 집착한다. 마농이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여기는 것이다. 마농은 좀 다르다. 마농은 자신과 피에르의 관계가 변해버린 것에 대해 슬퍼하며, 피에르의 행동에 상처 받지만, 저지하지는 않는다. 힘들기는 해도, 피에르의 배신을 수용한다. 이 두 인물, 마농과 피에르의 인식의 차이는 결국, 사랑이란 본디 배신임을 깨달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마농은,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어도 느꼈을 것이다. 사랑이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는 소란하지 않다. 내용이 다소 소란하기는 하지만, 차분하고 담담하게 내러티브를 전개해나간다. 미니멀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듯, 미쟝센은 집약적이면서도 예술적이다. 몰입하게 하고, 감탄하게 한다.

집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미쟝센. 프레임 안에 거리의 모습을 담아낼 때 그 예술성이 특히 발휘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오직 영화의 결말이다. 서로의 배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별한 마농과 피에르가 1년 만에 재회하여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결말은, 정말이지, 어휴.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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