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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Nov 13. 2016

<킬 유어 달링>, 존 크로키다스 감독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본문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영화 정보'


뭐, 딱히 대단한 인생을 산 것도, 하물며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지만은 그래. 고작 요만큼 살아보고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면, 삶은 결단코 기대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다. 삶은, 외려 기대와 희망을 와장창 깨뜨리는 식으로 나에게, 나의 실존에 저항해 왔다. 나는(인간은) 실존을 지키기 위해 삶에 대항해 고군분투한다. 그렇지 않은 인간도, 물론 있다. 삶이 흘러가는 대로 기꺼이 자신을 내맡기는 인간은 둘 중 하나다. 하수이거나, 고수이거나.

"어떤 것들은, 한 번 사랑하면, 영원히 내 것이 된다. 아무리 놓으려 해도 다시 돌고 돌아 내 곁으로 온다. 내 일부가 돼 버리는 것이다. 아님 날 파괴하거나." - 앨런긴즈버그

영화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의 앨런 긴즈버그, 루시엔 카, 윌리엄 버로스, 잭 케루악. 이 몽매한 네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존을 증명코자 했다.

"제약과 검열이 없고 진실된 자아 표현"
"압운, 운율, 비유.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시는 지저분해져. 삐져나온 셔츠처럼. (중략) 전통과 양식이 있기에 이 대학이 존재하네." - 스티브스 교수     

네 청년은 전통과 양식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그 증명을 시작했다. 전통과 양식이란 으레, 존재를 그 품에 가두고 삶이 나아갈 방향을 제멋대로 결정하려 드는 틀(frame)이다. 틀에 의해 잘 재단된 삶은 실존을 위협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나타났군!" - 루시엔 카

예이츠의 ‘환상’을 모티브 삼아 ‘신 환상’이란 이름으로 문학혁명을 시작. 4총사는 술과 마약 섹스, 일탈이 선사하는 각성과 쾌락의 멜로디에 맞춰 존재의 진실, 실존을 파고드는 노랫말을 써내며 기성 양식과 전통을 마음껏 조롱한다.     

"네 영혼 안에서 광기가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네 무지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네 무지 또한. 너 고통 받은 자여. 숨은 사랑을 찾아 주고, 나누고, 잃어라. 피우지 못한 채 죽지 않도록."  - 긴즈버그의 시(詩)     
"취하지 않고 행복한 자를 보여다오. 내 그 거짓말쟁이의 주름진 항문을 보여줄 터이니."

술과 마약, 섹스와 일탈이 실존을 증명할 수 있냐고? 하, 구닥다리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당신은 평생을 술과 마약에 찌들어, 섹스만 하면서 살 수 있는가?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에 갇혔다. 누군가 깨기 전까진." - 예이츠

‘신 환상’은 좁은 강의실과 고루하게 낡아버린 교과서로부터의 자주적 추방이었다. 다만,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고고한 건물들과 죽은 글들만을 실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한 것은, ‘신 환상’의 한계였다. 전 세계가 포화의 매캐한 연기에 잠식되어 가던 1940년대. 교정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인간의 실존과 존엄이 잔혹하게 학살당하고 있음을, 그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전쟁은, 비루한 양식과 전통, 질서가 인간의 실존을 심각하게 훼손, 침해할 수 있음을 부끄럼 없이 노출하는 대표적 사례다.     

"네 참호는 어디야?" - 잭 케루악
"삶을 원하나? 포화 속 세상을 원해? 세상은 이미 전쟁 중이야. 직접 경험해 보겠나?" - 스티브스 교수
"난 벽에 전시되는 걸로 끝나고 싶진 않아." - 루시엔 카

'신 환상’은 의의는 인간이 지닌 본연의 성질과 그것의 고유한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틀의 견고한 외벽에 부딪혀 추한 몰골로 처참하게 조각나버린다. 설익은 채로 팔딱거리는 심장을 함부로 세상 밖에 내보인 것이 ‘신 환상’의 실수였다.     

"취하지 않고 행복한 자를 보여다오. 내 그 거짓말쟁이의 주름진 항문을 보여줄 터이니."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 예이츠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의(인간들의) 실존을 지키기 위한 분투는 계속된다. ‘신 환상’의 몽매함을 마냥 비웃을 수만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다른 사랑이 우주에 나타나고, 반복되던 순환이 깨져버리지만, 죽음과 함께 새로운 생명이 온다." - 앨런 긴즈버그

코너_ 영화 <킬 유어 달링> 속 명대사

날 떠나면 안 돼.
- 긴즈버그에게 그의 어머니가.
그저 쌓아둔 사랑은 썩어들기 마련.
그러기에 진정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가 건낸 것(우리가 버린 것).
- 루이스 긴즈버그(앨런 긴즈버그의 父)의 시(詩)
(괄호 안의 말은 앨런 긴즈버그가 변용한 것.)
컬럼비아라는 세계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에 갇혔다. 누군가 깨기 전까진.
네 자신을 알고, 네 자신을 망쳐라.
새벽에 불타는 끈기로 무장한 채 우리는 화려한 도시로 입성할 것이다. - 랭보
나 복잡한 거 좋아해. - 루시엔, 앨런
마음 깊이 증오하는 것.
우리가 뭘 하는지도 모르잖아.
저 사람들 생각대로 행동하기 싫었거든! - 앨런 긴즈버그
또 다른 사랑이 우주에 나타나고, 반복되던 순환이 깨져버리지만, 죽음과 함께 새로운 생명이 온다.
- 앨런 긴즈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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