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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Dec 16. 2016

<라라랜드>, 데미언 차젤 감독

꿈으로 향하는 노래

*이 글은 영화 <라라랜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별들의 도시여, 나를 위해서만 빛나는가.

별들의 도시여,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구나.

별들의 도시여, 오직 바라는 것은.

술집에서나 북적이는 식당의 담배 연기 속에서도.

사랑.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초록빛 융단 위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흘렀다. 미아(EMMA STONE)와 셉(RYAN GOSLING)이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노래할 때에, 나는 왠지 가슴이 시큰거렸고 조마조마하였고 두렵기도 하였고 쓸쓸해졌다. 나도 모르게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귀를 녹일 것 같은 아름다운 하모니가, 앞으로 펼쳐질 슬픈 이야기의 서막임을 나는 알았다. 그 장면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노래하지 않는다. 내 것이 되는 순간, 아니 내 것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순간에 모든 것은 쓸쓸해지고 만다. 쓸쓸해 버린 것에 대한 노래는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내 것은 반짝거리지 않으므로, 무뎌져버린 것의 빛을 되찾기 위해서나 다른 빛나는 것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고 걸음을 옮긴다. 그러한 행태를 흔히들 ‘낭만’이라고 하더라. 우스운 일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무엇이 낭만인 줄도 모르고 낭만에 머무르면서 낭만을 지나쳐가는 것은 사람이 어리석은 탓이다. 그런 어리석음이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는 것은 상황의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고자 하는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 ‘빛나는 것’은 ‘나를 충족할 만한 것’이다. 꿈이나 사랑 따위의 것들. 하지만 틀렸다. 꿈이나 사랑이 이뤄진다고 해서 나를 충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상에 나 자신을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탓으로, 미아와 셉은 꿈을 좇고 있을 때나, 서로를 만나 사랑을 할 때나, 사랑을 잃고 꿈을 이루었을 때나 고독하고 불완전했던 것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무엇이 낭만인 줄도 모르고, 낭만에 머무르면서 낭만을 지나쳐간다. 라라랜드에 머무르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서, 그곳을 지나쳐, 또 다른 라라랜드를 향해… 가는 것은 어리석다. 어리석은 존재들을 가여워하는 것은 나 또한 어리석기 때문이다.     

영화는 내내 환상적인 미장센을 연출해낸다. 미아와 셉이 손을 맞잡고 날아갈 듯 춤을 출 때마다 그 뒤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형형색색의 조명이 반짝이고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화려한 미장센이 보여주는 환상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잔혹한 몽타주가 직시하는 현실이다. 아무리 절절하게 노래해 보았자, 사랑은, 꿈은, 결코 아무것도 충족해주지 못했다. 다만 그것들은 삶이 나아갈 바를 변화시켰다. 사랑은 그녀로 하여금 꿈을 좇게 했으나, 그로 하여금은 꿈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녀가 앞치마를 벗어던질 때, 그는 밴드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그녀가 자신의 무대를 구상해갈 때, 그는 자신의 것으로 바라지 않는 무대를 감당하려 했다. 사랑 덕에 꿈꾸었으나, 사랑 탓에 꿈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을 땐 이제 사랑이 빛바랜 채 숨어버렸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나란히 걷던 연인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미아가 출연하는 영화의 거대한 벽보를 스쳐 지나는 셉이 있을 뿐이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의 마지막 10분, 이 찬란한 대미를 보고 있노라면 연상되는 작품들이 참으로 많다. 쏟아지는 미장센들은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를 연상케 하기도 하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5>이나 필리다 로이드 감독의 영화 <맘마미아(MAMMA MIA), 2008>,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2>,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GRACE OF MONACO), 2014> 등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미아 부부가 아이를 보모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장면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의 한 장면과 완벽히 똑같다. 마법이 펼쳐지듯 아름다운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이만치 잔혹한 몽타주도 없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10분 동안 향수와 회한이 요동치며 폭발한다.

마법 같은 미장센, 그 잔혹한.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던져 주어 날 혼란하게 했다. 어리석은 이들이 어리석은 이들에게 보내는 찬가가 어리석다 느껴지면서도 어리석은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난 자꾸만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창 너머로 어둠에 쌓인 차도를 바라보았다. 당장 차도로 뛰어 내려가 바람이 이끄는 대로 팔다리를 흔들면, 나의 인생을 바꿀 누군가가 나의 손을 잡고, 별이 빛나는 환상의 무대로 날 인도하여 줄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어느 이상한 인간에게 붙잡혀나 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원.

누군가 별이 빛나는 환상의 무대로 날 인도하여줄까...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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