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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Feb 19. 2017

<조작된 도시>, 박광현 감독

마이너들의 저항

영화의 제목은 ‘조작한’ 도시가 아니라 ‘조작된’ 도시다. 조작 ‘당한’ 이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제목은 그 자체로 저항 의지를 풍긴다.

조작된 도시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에서, 국선 변호사 민천상(오정세)이 범죄 사실뿐만 아니라 도시의 흐름까지 조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빅 데이터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규모의 빅 데이터를 개인이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누구든 민천상이 저지른 짓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짓도 저지를 수 있다. 특정 인물을 감시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함부로 유용하여 범죄 현장을 조작하는 데 이용하고, 도시의 도로 교통 체계 무질서하게 바꾸어 수많은 인명을 위험에 빠뜨린 죄는 몹시 크지만, 이 모두는 빅 데이터를 손에 쥐고 활용할 수 있는 인물이 저지른 범죄 치고는 다소 진부하고 소박하다. 훨씬 극악하고 저질스러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민천상이 오히려 관용을 베풀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빅 데이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악(惡), 그 뒤에 숨은 극악(極惡)이다. 빅 데이터를 활용해 도시를 조작하는 자는 민천성이지만, 그의 그러한 행태를 눈감고 보아주며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하는 자들은 국회의원이나 재벌총수 따위의 사회·경제적 강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그 책임과 본분을 망각한 채로 오로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그 힘을 오·남용하여 그릇된 개인의 능력을 거래하고, 자신들이 저지를 수 있는 더 큰 죄를 행한다.

조작된 도시의 희생양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정보를 독점하고 도시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거나 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힘을 자신 혼자만의 것이라 착각하고 그 힘을 엉뚱하게 휘두른 죄, 그 죄의 대가는 억울하게도 다른 이들에게 돌아간다. 무직자, 성매매 종사자 등 사회적 약자나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영화 <조작된 도시>는 사회적 강자들이 벌인 범죄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들이 저마다의 힘을 모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침해당한 자유와 이익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몹시도 익숙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클리셰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그럼에도, 영화 <조작된 도시>는 범죄 액션 오락 영화로서 관객들에게 충분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흥미로운 소재, 배우들 간의 조화로운 어울림, 여성 캐릭터와 액션 신(Scene)의 진보 등 다양한 영화 내·외적 요소들이 결합한 결과이다. ‘빅 데이터’가 그 자체로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중심 소재로 쓰이다니. 영화 <조작된 도시>는 내게, 십여 년 전 톰 크루즈 주연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았을 때의 신선함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이 말은 물론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나는 또한 <조작된 도시>가 새로운 소재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 점에 대해 다소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현실 곳곳에서 빅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지만, 빅 데이터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직까지는 충분히 신선한 시도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개봉했을 당시와 비교해, 빅 데이터가 이제는 상상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완전히 가까워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화콘텐츠의 소재로서 그것의 가치는 더욱 높아 보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배우들은 개성 넘치는 연기를 통해, 또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연기를 해냄으로써, 스토리라인을 빈틈없이 채웠고, 영화의 매력을 폭발시키는 데 기여했다. 배우 지창욱은 이 작품에서 첫 영화 주연으로 열연했는데, 그를 권유 역에 캐스팅하는 데 있어 반대가 많았다고 함에도 박광현 감독이 지창욱의 권유를 만들어낸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배우 지창욱은, 그간 액션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뛰어난 액션 배우(*액션도, 연기도 모두 뛰어난)로 활약하며 소위 ‘액션 장인(匠人)’으로 거듭났는데, 그 명성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다시 한 번 증명해낸다.

액.션.장.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배우 심은경이 열연한 여울(이라 쓰고 털보 형님이라 읽는다) 캐릭터는 능동적·주체적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 리더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범죄 액션 영화에 등장했던 여성 캐릭터들과 차이를 보인다. 여성 캐릭터의 다변화와 능동적 여성 캐릭터의 개발은 영화예술의 진보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배우 심은경은 지난 작품들에서 일정한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 훌륭하게 소화해냈는데, 그녀는 그 내공을 <조작된 도시>에서도 여지없이 발휘한다.

능동적,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개발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변호사 민천상 역의 배우 오정세, 데몰리션 역을 맡은 배우 안재홍, 마덕수 역의 배우 김상호, 용도사 역의 배우 김민교, 여백의 미를 연기한 배우 김기천, 그리고 사무장 역의 이하늬까지,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은 주·조연 가릴 것 없이, 각기 자신의 개성을 담은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면서도, 서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는데, 화려하다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대장과 데몰리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조작된 도시를 되찾으려는 마이너들의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현실과는 다소 다른 결말이거나, 아니면 지독히 현실을 반영한 결말이더라도 어떠랴. 영화는 충분이 흥미롭고 짜릿하다. 영화를 본 후에는 이 영화가 오락을 선사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남긴 생각할 거리들을 고민해야 할 테다. ‘빅브라더’, ‘감시사회’, ‘정보독점’, ‘정보 불평등’ 등의 개념은 지금껏 사회의 특정 영역에서 몇몇 사람들에게만 논의되어 왔다. 모든 시민들이 조금씩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 낼 생각을 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 <조작된 도시>가 액션 영화의 신세계뿐만 아니라 나아가 ‘빅 데이터’ 논의의 신세계로까지 관객을, 시민을 이끌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영화 <조작된 도시>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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