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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Nov 07. 2017

<나만 없는 집>, 김현정 감독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 수상작

영화 <나만 없는 집>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저는 큰 딸이에요” 했더니, 김현정 감독은 호호, “어떻게 보셨어요?” 했다.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더 기다리고 있어서,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서둘러 물러나왔다. 감독이 보실지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답 드린다.

     

2016년 여름에 15주년 미쟝센 단편영화제(MSFF)에 자원 활동가로 참여했다. 그 해에는 대상 수상작이 없었다. 올해는 대상 수상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11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엄태화 감독 작품 <숲> 이후 5년만이라니 반갑고 궁금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 국내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다기에 서둘렀다.     


영화는 ‥ 사랑스러웠고깔깔 웃음도 나게 했고그리고그리고 몹시 슬펐다.     


영화 <나만 없는 집>은 ‘고립’에 대한 이야기다. 고립은, 주변의 그 누구도! 고립된 이가 고립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누군가에 의해 호명되는 고립들이 있다. 공동체 안에서 사례들이 축적되며 유형화된 고립이다. 호명되는 고립은 비교적 다행스럽다. 누군가 때때로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해야 할 것은, 호명되지 못하는 고립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한 일상 속에 암울하고, 암담하게 가두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존재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만 없는 집>의 표면에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흐른다. 세영(김민서)과 선영(박지후) 자매의 갈등. 세영이 부모와 겪는 갈등. 세영이 친구와 겪는 갈등이 주요하다. 그러나 영화를 오직 갈등의 이야기로서만 이해하기는 아쉽다. 갈등을 비추는 창(窓)안으로 한 발짝 걸음을 내딛으면 개인이 가정이라는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공동체 안에서 돌보아지지 못한 채로 서서히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내내 세영이 어떻게 집 안에서 고립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영화의 서사를 살펴보면, 세영의 고립은 집안사람 중 누구도 세영을 돌볼 여력을 가지지 못하는 데서 초래된다. 세영과 선영의 부모는 ‘부모라서’, 자매를 양육하고 살림을 유지하기 위해 온종일 바깥에서 노동해야 한다.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대신 자매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까, 하는 선택 따위는 할 수 없다. 부부가 매일, 내내 벌어도 자식들에게 변변한 새 옷 사주기가 어렵다. 선택의 여지없이, 오직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벌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세영을 돌보아야 할 책임은 온전히 언니 선영에게 전가된다. ‘언니라서’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은 몹시 고달픈 책임이다. 겪어봐서 안다. 그래서 잘 안 돌본다. 아니, 조금 더 진실하게 말하자면 돌본다고 돌보긴 하는데 잘 돌보아지지가 않는다.     


당해 결과로 세영이 고립된다. 하지만 나는 세영의 고립만이 우려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선영의, 엄마(이미정)의, 아빠(천정락)의 고립 또한 걱정되었다. 고립의 서사에서 개인의 욕망이 외면당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사람의 삶이란 크고 작은, 깊고 얕은 욕망들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한데, 욕망이 외면당한다는 것은 삶이 부정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큰일이다.     


영화에서는 ‘걸스카우트’가 세영이 간직해왔던,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에 이룰 수 없었던 욕망들을 총체로서, 개별로서 대유한다. 세영이 직면하게 될 시간들에 속해 있는 욕망들까지도. 걸스카우트의 원관념은 습관적으로 언니에게 기울어왔던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며, 언니와 동등하게 서는 것이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 등이다. 오랜 시간 동안 억눌려야 했던 욕망들을 마침내 실현하고자, 걸스카우트 입회비를 마련하기 위해 세영은 어떠한 행위들을 한다. 그 행위들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난 날 이루지 못해 잊혀간 나의 것이었던 욕망들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오랜만에 알싸하게 흩어져 나와,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세영의 모습은, 어릴 적 나의 유사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아름다웠으나, 잊혀간 욕망들을 탈출하게 하였으므로 아렸다. 모순적인 감상에 젖은 이가 나만은 아니리라.     


마침내, 세영이 선영의 걸스카우트 단복을 가방에 구겨 넣고 집을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떠나간 욕망들을 다시 붙잡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영화 속의 세영도 그리고 나도, 아마 영화를 보고 있는 다른 이들도 모두 알았을 것이다. 잠깐이나마, 어찌할 수 없이 쌓여만왔던 세영의 욕망이, 온전히 살아지지 못하고 머물러왔던 한 개인의 삶이, 마침내 실현되는 순간을 나는 응원하고 싶었다.     


농도 짙은 눈물이 뚝뚝 멈출 길 없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울었다. 울면서, 아주 오랫동안 외면당한 서러운 욕망을 나는 세영과 같이 녹여냈다. 세영의 눈물과 어머니의 다독임으로 어우러진 영화의 결말이 풋풋하기는 해도 행복하지는 않다고 느낀 것은, 일시적인 욕망의 해소가 고립의 탈피로 즉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한 때문이다. 세영과 어머니가, 집안사람들이, 서로의 눈물과 손길에 기대어 차차 조금씩이라도 연대의 여지를 만들어볼 수 있기를 부디 바랐다.     


김현정 감독의 자전적 영화였던지라 영화를 비추는 시선은 아파도 내내 따뜻했다. 영화를 보며, 누군가는 ‘호명되지 않는 고립’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위로받았다. 이것이 감독의 물음에 대하여 제 때에 드리지 못한 나의 대답이다. 큰딸에게도, 작은딸에게도, 부모에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으니, 다만 고립의 존재를 이해하고 따뜻한 손길과 이해의 눈물로 그 고립을 깨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함께 노력한다면, 나만 없는 집도 언젠가 반드시 제발, 나도 있는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나만 없는 집>의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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