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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Jan 07. 2018

<1987>, 장준환 감독

미안함이면, 부채감이면 어떤가요.

나는 촛불 세대다. 2016년의 겨울과 이듬해 봄을 일렁이게 했던 그 촛불을 말함이 아니니. 그보다 더 이른 날의 촛불,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동 때 광화문을 밝혔던 촛불을 말함이다. 부끄러이 고백하건데 그 해에 열여덟 살이었던 나는, 실은 단 한 번도 광장에 나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집회에 다녀온 몇몇 친구들이 광장에서의 시간들을 생생하게 펼쳐놓았다. 나는 그것을 듣기는 했으나 지나쳐 버렸다. 내가 할 일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합리화했다. 두려워서였다. 나도 교육과정을 거치며 광장의 역사를 배웠다. 배우기로 광장에서는 늘 ‘무엇’을 위한 피가 흘렀다. 광장에 당당히 나와, 피 흘리면서도 ‘무엇’을 외쳤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볼 때면 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라도 흘려야 해서 그랬을까.    

 

다시, 나는 촛불 세대다. 2016년의 설한과 2017년의 희망을 아우른 그 촛불을 말함이다. 1차 촛불집회가 열렸던 2016년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나는 그날에도 광장에 나가지 않았다. 광장이 아닌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어여쁜 케이크 위에 촛불을 밝혔다. 그날 난 생일을 맞았었다. 광장에 나가지 않은 것이 생일이었기 때문은 물론 아니었다. 여전히 내게 광장은 두려움의 공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 공간이었다. 집의 울타리 안에서,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합리화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은 편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았고 케이크 위의 촛불이 조금도 어여뻐 보이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케이크 위의 촛불이 내게는 광장의 촛불처럼 여겨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케이크 위의 촛불을 불어 끄고, 나는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고맙습니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에 나의 생일을 기억해주고 축하해준 사람들,
나에게 품을 내어준 사람들 정말 고맙습니다.
더불어, 마땅히 행복할 날에 마음 편히 기뻐하지도 못하는 시국입니다.
이렇듯 추운 날에, 거리에서 애처로이 빛나고 있을 촛불을 떠올리니,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소원을 빌면서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갔더랬습니다.
민주주의를,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수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고,
셀 수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있을 곳에서 뜻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촛불 #고맙습니다.  

일주일 후, 2016년 11월 첫 토요일에 열린 2차 촛불 집회 때 나는 광장에 있었다. 케이크 위가 아니라 종이컵 안에 촛불을 밝히고서. 미안해서, 미안해서였다.     

미안해서, 미안해서였다.

영화 <1987>에서 연희(김태리)가, 선배 이한열(강동원)이 최루탄에 맞고 스러지는 사진을 석간신문에서 발견하고 광장으로 달려 나가는 장면을 보며 나는 연희가 나 같았다. 연희는 데모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쏘아 묻던 인물이었다. 어릴 때, 자신의 아버지가 사(社)측에 맞서 투쟁하던 중 동료들의 배신으로 실의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세상을 떠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 연희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하염없이 광장을 향해 달려가더니 마침내는 버스 위에 올라 주먹을 부르짖으며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친 것은, 누군가를 향한 미안함과 부채감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연희가 나 같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1987>은 미안함, 그리고 부채감의 정서를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 영화다. 스물두 살 청년 박종철의 숨으로 싹튼 미안함과 부채감이 스물한 살 청년 이한열의 어깨를 지나 마침내 청년 일반의 연대로 확장되고, 공동체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전한다. 박종철 열사가 영화의 전반부를 이끌고, 이한열 열사가 후반부를 민다.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미안함과 부채감의 축이 영화 <1987>의 안타고니스트인 박 처장에게도 적용되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1987>의 박 처장(박처원 내무부 치안본부 치안감, 대공수사처장, 배우 김윤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시하는 독재 권력의 핵심인사로서 불의한 권력의 화신이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 폭압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박 처장이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정당한 사람들을 해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 어린 시절 가족이 죽창에 찔려 죽어갈 때에 몸을 피해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미안함과 부채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영화 속의 정황은 아이러닉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의 악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박처원 내무부 치안본부 치안감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어떤 아버지가 아들 시신도 확인도 안 하고 화장을 하라 그러나?”

대학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쇼크사로 은폐하려던 경찰의 시도를 가장 앞에서 저지하는 이는 최 검사(최 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부장검사, 배우 하정우)다. 그는 경찰이 협박조로 들고 온 시신 화장동의서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고, 사체보존명령 및 부검명령을 발부한다. 부검을 진행하기 위해 박종철 학생의 시신이 안치된 한양대학교 부속 병원을 찾은 최 검사가 ‘내 아들 손이라도 한 번 마지막으로 잡아보게 해 달라’며 오열하는 박종철 학생 어머니와 가족들을 하릴없이 바라볼 때에, 그 눈에 미안함과 부채감이 짙었다. 가슴이 떨리게 궁금하였다. 그 미안함과 부채감은 검사로서의 것이었을까, 인간으로서의 것이었을까.   

최 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부장검사를 연기한 배우 하정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경찰이 고문해서 대학생이 죽었는데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뒤 재지 말고 들이박아!”

최 검사가 부검을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할 때, 한편에서는 언론이 움직인다. 동아일보 윤 기자(윤상삼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 팀 기자, 배우 이희준)는, 박종철 학생이 사망한 1월 14일에 경찰의 요청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최초 목격한 중앙대학교 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을 좇아 고문에 의한 사망가능성을 확인하고 보도한다. 이곳저곳 참 바지런히 들쑤시고 다니는 윤 기자의 모습을 보며, 언론의 집착이 바른 곳을 향하던 시절을 나는 잠시 그리워했다.

“아니 왜 취재를 못 해!”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무마하고 싶었던 경찰 측에서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취재하려던 시도를 저지하자,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는 윤 기자의 형형한 눈에도 지독한 부채감이 박혀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 하는 데서 기인한 부채감.     

윤상삼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 팀 기자를 연기한 배우 이희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왜 가지를 못하니 종철아!”

아버지는 오열하면서, 물길 따라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아들의 유해를 직접 흘려보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얼마나 아팠으면, 얼마나 억울했으면. 떠나지도 못하는 자식에게, 잘 가라는 당부밖에 주지 못하는 남은 이의 심정을 무엇으로 보살필 수 있을지. 어쩌면 그 심정의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이라도 보살필 길은 하나뿐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일 테다. 아무 할 말이 없다는, 죽은 자식을 향한 헤아릴 길 없는 아버지의 미안함과 억울함은 흐르고 흘러 살아 있는 다른 아들에게 닿는다. 유족들이 박종철 학생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으로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연결된다.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님을 연기한 배우 김종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야 그럼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

옥중에서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민주화운동가 이부영(배우 김의성)은 그 내용을 비밀서신에 적어 재야인사 김정남(배우 설경구)에게 전한다. 이부영의 옥중서신을 재야인사에게 전달하는 이가 한병용 교도관(한재동, 전병용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 배우 유해진), 그리고 연희다. 여러 사람의 손을, 마음을 흐른 진실은 기필코 5.18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도 연설을 통해 폭압의 둑을 깨고 세상 밖으로 흘렀다.  

한재동, 전병용 영등포 교도소 교도관을 연기한 배우 유해진, 그리고 연희를 연기한 배우 김태리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민주화운동가 이부영의, 재야인사 김정남의, 그리고 교도관 한병용의 미안함과 부채감. 항시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재야의 동지들, 자신을 대신해 끌려가 고문 받고 갇힌 동지들을 향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엾이 떠난 매형과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조카를 향한, 종종 무겁고 아픈 마음들이 진실을 거세게 흐르게 했다. 진실은 흐르면서 다시 다른 이들의 미안함과 부채감을 파도치게 했다. 6. 10 민주항쟁이었다.     


“나도 잊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던 그 순간을, 나는 숱하게 보아왔다. 87년 6월의 상징으로 언제고 되살아 다시 스러졌던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두려우셨냐. 감히 감사하다. 잊지 않겠다.’ 했다. 영화 <1987>을 보면서 순간이 시간으로 변하여 덮치어 옴을 느꼈다. 그는 나의 눈앞에서 되살아 다시 스러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가 떠나버렸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시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당사자가 되어 나의 마음에 또 하나의 미안함과 부채감이 얹혔다.    

촛불. 나란히 둘.

6. 10 민주항쟁은 87년 체제를 이루었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실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폐지, 국회의 국정감사권 부활 등이 그 때의 성과다.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 연희, 최 검사, 윤 기자, 한 교도관은 87년 체제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87년 체제 위에 97년 체제가 들어섰다. 97년 체제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양극화 심화를 초래했다.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은 제 손으로 바꾸어도,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느라(혹은 그마저도 어려워)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갈수록 가난해져만 가는 삶을 바꾸기는 어려워졌다. 가난이 가까워 자유가 멀었고, 민주주의는 거짓말처럼이다. 민주적이지 않은 일들은 어디에서고 일어나므로.     

차마 잊을 수 없게, 마음이 너무 아파서.

차마 잊을 수 없게, 마음이 너무 아파서.

2016년. 그리고 2017년. 촛불이 일렁이던 광장에 나를 머무르게 한 나의 미안함과 부채감은 바로 눈앞에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잊을 수 없는 날의 기억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 기억으로 나는, 고작 조그만 케이크에 촛불을 밝힌 것을 부끄러워하고, 나를 낳으시던 그날에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예찬하는 마음조차 두려워했다. 헤아려보면, 나의 부채감은 동류를 향한 것이었다. 꼭 나처럼, 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았을 젊은 사람들. 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간 젊은 사람들. 어쩌면 살아서도 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어려운 젊은 사람들. 그들이 가여웠고, 나는 내가 너무도 가여웠다.      


그 가여움이 미안함이고 부채감이었고, 나를 광장에 다른 이들과 함께 머물게 한 마음이었다. 광장에 머문 것은 어쩌면 도피일 수도 있고, 당당한 마주함일 수도 있겠다. 위태로운 자유, 그 위의 빈곤.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다만 두려움 안에서 서서히 스러지지 않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바꾸어 반드시 살기 위해 나는 광장에 있어야 했다. 어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때만큼은 외려 마음이 편안했다. 어쩌면 무엇인가 하나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잠시나마 가져도 될 것 같아서.


<1987>은 미안함, 그리고 부채감의 정서를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 영화다. 작동의 범주는 영화의 안팎을 포괄한다. 장준환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역사를 박제화 하지 말자’는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일찍이 나는 영화 <덩케르크>와 <군함도>, <택시운전사>를 본 후에 ‘역사를 바라는 방식’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영화가 역사를 바라는 방식은 ‘소비’가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소통’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1987>은 청년 박종철에게서 시작해 청년 이한열에게서 끝이 난다. 그 끝에 연희가 있었다. <1987>에서 연희는 세 차례 화면 밖을 주시한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꼭 나 같은 연희가 되어 나는, 청년 박종철의 숨과 청년 이한열의 손을 느꼈으므로 이제 그녀의 시선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은 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되었다. 다른 이들과 함께라면 더 멀리 상상하고 더 따뜻한 답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장준환 감독은 또, “사실은 젊은 세대에게,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년의, 청년에 의한 <1987>이 청년과, 시민 일반 모두를 위한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미안함이어도, 부채감이어도 괜찮다.

<1987> 그리고.. 지금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 본문에 실린 영화 스틸컷 및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 그 외 사진은 모두 작가가 직접 촬영하여 소장하고 있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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