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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Feb 01. 2022

<해피 뉴 이어>, 감독 곽재용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oh 달링, 떠나가나요?
새벽 별빛 고운 흰 눈 위에 떨어져 발자국만 남겨두고 떠나가나요?

생각해 보면 영화 같았지.
관객도 없고 극장도 없는 언제나 우리들은 영화였지.
보고 싶다 예쁜 그대 돌아오라.
보고 싶다 예쁜 그대 돌아오라, 나의 궁전으로!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추네.......

- 명동콜링

초조했다. 지난 몇 해 내내. 계속 그랬다. 애가 타고 피부가 마르고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이 무서운 세상에 이렇게 속이 훤해서야 원.


입시, 취업 같은 삶의 문턱을 마주하고 있을 때조차 이렇게 초조하지 않았다. 때로 뒤숭숭해지면 ‘어떻게 되겠지 뭐’ 싶었다. 그저 말뿐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어떻게든 될 것으로 알았다. 그것이 패기였을까.


무엇이 이리도 초조하게 할까.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콕 집어 설명되지 않았다. 초조함은 다만 과거를 반추하게 했다. 지난날은 하염없이 어여뻤다. 어여쁘지 않았던 순간들조차 함빡 어여쁘기만 했다. 수채화처럼 추억에 젖었다 마른 뒤에는 쓸쓸해졌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아졌다. 그럴 때면 짐짓 예전처럼 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되겠지 뭐.” 마음은 10원 어치 만큼도 편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힘이 있었을까.


2021년 12월 29일 오후 9시쯤.

위스키 한 잔을 따랐고, OTT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잠시 고민하다 영화 <해피 뉴 이어>를 재생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도착한 사연.


제 인생에는 왜 마법 같은 일이 생기지 않는 걸까요?


영화 <해피뉴이어>의 서사(序詞)다. 연말이 되면 곳곳에서 한숨에 섞여 터져 나오는 이 물음에는, 한겨울 바깥에선 기필코 뿜어져 나오는 입김인 듯 어찌할 수 없는 욕망이 배어 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마법 같은 순간도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기운 내시라고 요청하신 신청곡 제가 직접 불러드리겠습니다.


캐럴을 활용한 오디오 매치 컷으로 서사는 영화의 무대 중심으로 옮겨온다. 반짝이는 오르골, 더 반짝이는 트리. 천장이며, 복도며, 계단이며 온통 붉은 구슬과 금빛 전구로 수놓인 호텔 ‘엠로스’다.


이곳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욕망은 얽히고설킨다.


영화의 중심 무대인 호텔.


호텔에서는 최고급 요리사가 만든 정갈하고 멋스러우면서도 맛있는 음식과 고가의 술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기본이요, 때마다 철마다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서비스는 가깝고 노동은 멀다. 현실에서 벗어난 듯, 꿈을 꾸는 듯하고 계속 취하다 보면 무언가 더 황홀한‥ 이른바 ‘마법 같은’ 순간까지도 갈구하게 만들지만, 대체로는 '욕망'에 그치고 만다.


허공에  가는 구름보다 아득하고,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만큼이나 아쉬운 그것.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갖고자 하고 누리고자 하고 탐하는  마음.


그렇다면 호텔 엠로스에서는 어떨까.


지난해 마지막 밤. 나는 서울 해방촌 모처에서 레코드판 음악을 듣고 있었다. 와인 몇 잔이 더해져 노곤해질 즈음, 갑자기 수레 10채가 동시에 지나가는 것 같은 소음이 들렸다. 밖으로 뛰쳐나가보니 캄캄한 허공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진즉 어둠이 내린 남산과 순간 제 값을 잃은 남산타워를 뒤로하고, 빨갛게 파랗게 보랏빛 황금빛으로… 폭죽의 잔재는 바람에 날리는 커튼처럼 너울너울 쏟아져 내렸다. 근처 호텔의 불꽃축제였다.


나의 상상은 금세 호텔 '엠로스'로 내달렸다. <해피 뉴 이어>를 보고난 뒤의 감정에 아직 머물고 있는 채였다. 눈을 감았다. 훅, 명치 쪽에서 따뜻한 기운이 피어나더니 이내 눈가가 뜨거워졌다.   


마법 같은 일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막연하게 내가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만나지 못한 이를 오죽 바랐던 마음. 그것이 초조함의 기인이었다.


<해피 뉴 이어>는 복잡하게 헝클어진 14개 욕망의 향방을 비추는 이야기다.


어떨까.


각각의 욕망들은, 그리고 나의 욕망은 한 올, 한 올 어여쁘게 풀려 순백의 자작나무에 날개처럼 걸릴 수 있을까.


(제목 그림 출처 : 네이버 영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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