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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Mar 03. 2016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감독

결코 면죄될 수 없는 기억

 죽음도, 시간도 갈라놓지 못한 위대한 사랑이야기. 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사랑에 관한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정말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오직 사랑 이야기를 쓰기에는, 타이타닉 호에 탄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았다.

 배는 전속으로 달렸다. 배의 소유주는 타이타닉 호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배에 이어 가장 빠른 배이기를 바랐다. 그는 선장에게  가능한 한 빨리 항구에 도착할 것을 주문했다. 선장은 그 말을 따랐다. 그 역시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기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소유주의 권한에 굴복한 것이거나.

 배에 탄 승객은 모두 2,200명. 그러나 구명보트는 그 절반인 1,100명을 태울 수 있는 정도만 구비되어 있었다. 구명보트를 승객 수만큼 달았다가는 배의 외관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배의 소유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타이타닉은 절대 침몰하지 않아요.”

 그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완전히 빗나갔다. 타이타닉은 빙산과 충돌했고, 곧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다. 선원들은 3등 칸 입구부터 봉쇄했다. 구명보트에는 1등 칸 승객들이 먼저 올랐다. 선실뿐만 아니라 목숨에도 등급이 있었다. 1등 목숨과 3등 목숨. 먼저 살아야 하는 목숨과 조금 나중에 살아도 되는, 죽어도 어쩔 수 없는 목숨.

 구명보트가 모두 동이 나자 보트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배의 난간을 잡고 매달렸다. 배는 금세 수직으로 기울었다. 난간을 놓친 이들은 물속으로 추락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과연 사랑의 힘은 위대한가. 인간이 만들어낸 끔찍한 참사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기댈 곳이 오직 사랑뿐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세상 가장 잔혹한 비극이다.

 배에 차오르는 물을 보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인간들 때문에 심지어 배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사람들이 자꾸만 화면에 겹쳐졌다. 영화 속 로즈의 말처럼, 살아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코 면죄될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이 또한 비극이다.

 마냥 아름다웠던 숱한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로즈와 잭뿐 아니라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안고 배에 올랐을 것이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배에 타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들이 품었던 모든 가치를 앗아가 버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멜로 영화를 재난 영화로 읽어내고, 결국에 사랑 이야기를 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산 자로서의 부채감 때문이다.

"3년을 타이타닉만 생각했는데, 내가 잊고 있었소. 인간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 영화 속 탐사대원의 말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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