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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Feb 29. 2016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홍상수 감독

- 이별공식

  "네가 사랑을 알아? 해보고 얘기해 짜식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일일 연속극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장면을 보며, 사랑하는데 왜 서로 마음도 모르냐고 내가 중얼거렸을 때 나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 때만큼 아빠가 낭만적으로 보인 순간이 있었을까.
   연애라는 것을 시작한 후, 어리석었던 것은 드라마 속 그들이 아닌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랑’을 느끼게 되었을 때, 사랑은 행복의 정의이면서 만병의 근원이자 불행의 씨앗임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전쟁이었다. 지치더라도 끝낼 수 없는. 자신이 가진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
   그랬던 사랑이 어떻게든, 어째서든 끝난다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이었다. 헤어짐을 부정하다가, 인정하다가, 이별의 원인을 찾다가, 책임 소재를 따졌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가, 그리워했다가. 연애할 때조차 잊고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달려와 심장을 찢어놓았고,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게 했다. 그 사람과 다투었던 수많은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왜 그 때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냐며 스스로를 다그친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다. 후회가 됐고, 씁쓸했다.


  사실, 그 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최선이었는데도 말이다.

  사랑이 끝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와 그대의 순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 속에 수없는 욕망들이 끼어들었다는 거다. 예를 들면 당신과 더 이야기하고 싶다거나(아마도 몸의 대화를 말하는 것이겠지), 당신을 더 알고 싶다거나(우리의 섹스가 어떨지가 궁금하다거나),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사실 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거나(나를 좀 봐줘, 알아줘, 들어줘)하는 서로를 매개로 하는 상이한 욕망들이 결국 이별을 가져오고 마는 것이다.

  지금이틀리고그때가맞다.

  비록 순수하진 못했더라도, 그 순간, 나와 네가 사랑하던 그 순간엔 그게 최선이었으므로. 솔직하지 않거나 솔직하거나 과했거나 부족했거나 그때는맞고지금은끝났다.

제목, 본문 사진 모두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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