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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장 Jan 21. 2022

새벽산

2022년 산행 #2.

작년 12월 그리고 이번 1월 두 번에 걸쳐 이른 새벽 산행을 다녀왔다. 머리에 불빛을 매달고 산으로 향하는 걸음은 이상하게도 가볍다. 밝을 때보다 힘도 덜 들고 무엇보다 잡생각을 지운다.


대학시절 조금은 다르지만 어두운 시간에 산을 올랐었다. 해가 진 후 이런저런 장비를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것이 좋기는 했지만 한걸음 한걸음이 참 고됐다.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주변에 눈을 돌릴 수도 없었다.  여유 따윈 없었다. 그때완 다르게 새벽 산행은 같은 어둠이라도 색이 달랐다. 붉은 해가 저물어가며 어둠이 찾아드는 시간과 어둠을 희석시키는 시간의 차이는 느껴지는 온도와 기운이 달랐다. 발걸음 또한 짊어진 짐의 무게와 별개로 가벼웠다.


이른 시간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묘하다. 주변은 잘 보이지 않고 바람소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시간. 특히 겨울 새벽바람은 골짜기를 타고 오싹하다 못해 공포의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언제라도 커다란 눈덩이가 쏟아져내려 덮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괜찮다는 자기 위안을 하며 스스로를 토닥여 아무렇지 않은 듯 앞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산이 좋은 점은 내가 갈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새벽 산은 내가 정한 목적지로 향하는 것 그 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 그리고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힘들지라도 길이 있기에 오르면 될 뿐이다.


새벽 산은 걸음이 빨라진다. 시작한 직후는 가장 어두운 시간이며 가장 추운 시간이다. 하지만 체력은 가장 좋을 때이며 가장 의욕이 넘치는 시기이다. 한 걸음씩 내딛고 걷기 시작하면 점차 땀이 나고 몸이 풀리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쉬어갈 겸 가방을 내리고 물을 마시면 그 물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다만, 찬물이 몸속에 들어와 체온을 낮추기에 많이는 먹지 못한다. 다시 가방을 메고 열심히 걷는다. 고개가 향하는 방향으로 불빛이 비치고 그 범위가 나의 시야다. 딱 고정도만 보며 한참을 걷는다. 한 시간, 두 시간 걷다 보면 숨이 차고 다리가 후 달거릴 수도 있지만 어느새 칠흑 같던 어둠도 조금은 걷혀 나무와 하늘이 랜턴 불 없이도 보이기 시작한다.


미명의 공기는 유독 차다. 하지만 몸이 많이 데워졌고 추위에 적응되어 그리 춥지는 않다. 진작에 호흡도 터졌고 몸도 올라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이다. 그만큼 걸음이 빨라진다.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시간을 확인하면 아직 여유는 있다. 페이스를 올려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 아래 또는 직전엔 유독 어려운 코스를 만나기도 한다. 조금은 긴장하여 마지막 고비를 넘으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정상에서 보이는 주변 전경에 감탄을 하고 물을 한잔 마시며 땀을 식힌다. 땀이 식으며 한동안 잊고 있던 추위가 급격히 몰려온다. 다시 몸을 데우려 발을 동동거리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능선 사이로 또는 구름 위로 붉은 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너를 보려고 이른 아침부터 이 고생을 했구나 싶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과 퍼져가는 햇살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곧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각을 잡아본다. 동행들이 찍어주는 사진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가득하다. 하루의 첫 햇살을 맞고 있다는 기분 좋음은 새벽산의 가장 큰 수확이며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끊을 수 없는 끌림이다.


산행을 마치고 올랐던 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며 비로소 그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의미 없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뭐 그것조차 새벽산의 매력이라 한다면 그럴 것이다. 새벽산에 오르자. 고요하고 포근한 그리고 황홀한 새벽산에 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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