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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이곳에 있다

Notre-Dame de Paris

by Yule

파리를 가장 잘 상징하는 장소를 하나만 말해보자면 어디일까? 에펠탑일까 아니면 루브르 박물관?

2019년 한 건물이 불타고 있을 때, 이곳 사람들은 말했다.

"파리의 심장이 불타고 있다."
“우리의 일부가 불타버렸다. 우리는 함께 재건할 것이다.”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자신들의 영혼과 정체성이 담긴 일부라고 말한 것이다. 파리 아니 프랑스 전체의 역사·종교·문학이 어우러진 집결체로, 이곳은 자신들을 수호하는 존재와도 같았다. 그 많은 대성당 중에서, 무엇이 이곳을 그토록 특별하게 하는 걸까?


Notre 우리의-Dam 여인, 이곳은 어머니의 품이다. 많은 중세의 성당들이 그러했듯, 이곳 역시 성모 마리아께 헌정되어 시민들과 국가 전체를 보호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센강 위 작은 시테 섬 위에 서면, 보름달처럼 청아하게 빛나는 파사드를 마주한다. 그 고귀하고 자애로운 인상이 어쩌면 뾰쪽 뾰족하고 높다란 고딕 첨탑의 거리감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2024년 12월, 노트르담이 처음 다시 문을 열었을 때, 파리를 찾았다. 하지만 성탄 주간이라 예약을 못해 결국 건물 밖에서 기도만 드렸었다. 그리고 다시 찾은 봄, 어마어마한 인파 속에 다시 뛰기 시작한 파리의 심장 속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었다. 사실 성당 안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도, 파사드 위에 새겨진 서사적 조각들의 이야기들을 찬찬히 눈에 담고, 시시각각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좋았다. 하지만 따뜻한 품으로 들어오니, 매 순간 살아있는 영적 미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어쩐지 편안하고 익숙한 공기가 펼쳐진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리브볼트 (Rib Vaults)가 만들어낸 공간감이 우리의 명당성당을 떠오르게 한다. 이 구조는 건물의 무게를 바깥으로 분산시켜 널따란 창문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제단 양옆으로 남쪽과 북쪽 측량에 자리한 13세기에 제작된 장미창 (Rose Window)은 오묘한 빛깔과 조형미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해가 있는 시간 제대 위로 가득 쏟아져 들어올 성스러운 빛 속에 머무는 상상을 해본다. 언제나 이곳에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를 씨앗처럼 마음에 심어둔다.

프랑스의 대성당들은 (이탈리아도 그랬던 것 같다) 측랑을 둘러싸고 각 성인에게 헌정된 별도 공간 (chapel)이 마련되어 있다. 성인의 삶과 행적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프레스코, 성화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작은 제단이나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어쩐지 가까운 어른들을 찾아뵙는 느낌을 준다. 스리랑카 순례길에 알게 되었던 성인분들을 이곳에서 뵈니 더없이 반가운 느낌이다. 그야말로 성당을 한 바퀴 걸었을 뿐인데 저절로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오히려 나 혼자만의 고요한 시공간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경험할 수 있는 힘. 신앙인임이 감사한 순간이다.

천사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아늑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 안에서 잠시 쉬어가며 영혼 가득 에너지를 채웠다. 같은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곳은 프랑스 역사이자 문학과 예술의 영감, 그리고 종교와 국민 정신의 상징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 1831)이 그려낸 것처럼 이곳은 시대의 기억과 민중의 목소리가 담긴 살아 있는 존재이며, 모든 이들의 수호자이자, 프랑스 국가 정체성이 알알이 기록된 역사와도 같았다.

우리에게 명동성당과 광장이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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