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livre et une tasse de thé
파리에 갈 때마다, 아무리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꼭 한 번은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 장소가 있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서점들 중에서, 이곳은 어쩐지 이방인이 아닌 반가운 존재로서 나를 맞아준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품이 너른 곳이랄까.
'아늑함'이라는 단어를 시공간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이 민트색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된다. 이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다. 섬세한 큐레이션으로 채워진 다양한 책들, 아기자기한 문구와 카드, 그리고 한 잔의 차와 정성 가득 만든 케이크까지. 어쩐지 책방 한편을 옹기종기 채운 사람들까지 이곳과 이질감도 없이 어우러져 있다. 느지막한 주말 오후, 작은 노트 한 권을 손에 쥐고 책과 함께 게으름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다.
서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회과학부터 생태, 실용서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책들로 가득하다. 이 공간을 만든 두 서점 주인인 줄리엣과 아나벨은 자신들이 직접 고른 책, 만화, 페미니즘과 사회참여를 다룬 포용적인 에세이들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곳은 또 북토크와 모임을 통해 삶과 토론이 공존하는 장소로서 존재한다. 대중문화, 글쓰기, 문학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워크숍도 스케줄이 가득할 만큼 함께 열고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연대와 사유의 풍경인지!
그래서 이곳에 있는 것이 좋다. 빈자리가 나자마자 앉아 무릎 위에 책 한 권을 올려놓고,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녹이며, 엉뚱하면서도 기분 좋은 상상에 잠긴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결을 지닌 책들로 벽을 채우고, 관심사가 닮은 사람들과 나직이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의 속도를 잠시 늦출 수 있는 이런 공간을 꾸릴 수 있을까. 한편엔 하늘이 내다보이는 창이 난 작은 작업실도 만들고, 아끼는 음악들은 잔잔히 흐르고, 마음을 다독이는 문장들이 공기처럼 스며드는 곳. 커피 한 잔과 슴슴하게 직접 구운 쿠키의 온기가 녹아있는 지극히 사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그런 서재 같은 공간 말이다.
바다와 가까이 산책할 수 있는 길
그리고 좋은 사람이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은데....
한쪽에선 뚝딱 모자가 만들어지는 뜨개질에 여념이 없고, 또 바로 옆에선 지난주 파리 도심에 격렬 한 폭력사태에 대한 토론이 치열하게 오간다. 책 한 권을 읽으며 열심히 공상도 하고, 프랑스어 리스닝을 하다 보니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계획된 일정 하나를 지워야 했지만, 하루치 에너지를 가득 충전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나설 수 있다. 책방 주인분이 이제 알아보시고 언제 파리에 또다시 올 거냐고 물어보신다.
"Je suis toujours prête à venir, rien que pour un livre et une tasse de th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