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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을까

Jardin des Tuileries

by Yule

나는 풍경화를 좋아한다. 오묘한 하늘빛을 품은 파동, 순간 불어오는 바람의 일렁임이 담긴 붓터치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단 피사체로 사람이 중심인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숨은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라면 모를까 굳이 그림에서 조차 사람들의 형태와 심리를 관찰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일까 나의 사진첩엔 대체로 사물과 풍경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피사체가 ‘나’일 때 최고로 불편하다. 하나 둘 셋 하면 반쯤은 눈을 감거나 세상의 모든 어색한 표정을 구현해 내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뚝딱거림을 아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그래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어주곤 한다.


세상에 수많은 풍경화가 있지만 그중 유난히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뭐랄까 거창하지 않아도 그저 시시각각 흘러가는 일상의 변화무쌍함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이 나에겐 특히 그렇다. 화실에서 뛰어나와 자연을 길잡이 삼아 붓을 들었던 그는 역사적 사건이 아닌 보통 사람들 그리고 직접 보고 느끼는 평범한 것들을 담아냈다. 마치 그날의 날씨 그리고 분위기가 통째로 담겨있는 것 같은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언제나 속살거리고 재잘거리는 이야기가 말을 걸어온다. 그중 튈르리 정원 사계절 연작은 내적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살포시 꺼내어 보는 소중한 작품이다.

비 오는 날의 튈르리 공원 겨울오후의 튈르리 공원 봄날 아침의 튈르리 공원

피사로는 일생동안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눈병으로 야외로 나갈 수 없게 되자 살던 아파트 창밖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튈르리 정원과 바로 접한 리볼리 길 (Rue de Rivoli)에서 내려다본 다채로운 빛깔의 튈르리 공원은 나에게 잠시 쉬어가는 안식처와도 같았다. 아무리 지친 마음이라도 이 그림 앞에 서면 어쩐지 한 발짝 더 나아갈 힘이 생겼달까. 때론 우산을 쓰고, 잔디 위에 앉아 쉬기도 하며 그렇게 수없이 화폭 위에 머물렀다. 그래서 파리에 당도했을 때마다 초록으로 우거진, 비가 내리는 그리고 크리스마스 빛으로 반짝이는 이 길을 찾았다.


튈르리 정원은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드 광장 사이에 위치한 지금도 파리의 일상 속 쉼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파리 사람들의 옥외 거실이라고 불리는데 넓은 산책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도 보고, 잔뜩 멋을 낸 초록초록한 나무와 화단을 구경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때론 길게 뻗은 수로와 물결치는 분수가 어우러진 호수 앞 초록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이 도심 안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다. 매년 여름엔 정원 축제(Fête des Tuileries)' 그리고 겨울엔 크리스마스 축제 (Le Marché de Noël des Tuileries)가 열려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2024년 크리스마스의 튈르리는 유난히 더 반짝였다. 수십 개의 나무 오두막으로 들어찬 가게들에 뱅쇼의 향기와 간식들이 넘쳐났다. 일단 수제로 만든 초콜릿을 한 손에 가득 쟁여두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너먼트와 장식품 구경에 나선다. 독특한 성물부터 신기한 작품들까지 그저 눈으로 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다. 야외인지라 밤이 되어 추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파리의 야경과 반짝이는 마법 같은 분위기가 찬 기운을 동화처럼 녹여주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정원은 그야말로 파리의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예술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으로나마 이 꿈결 같은 순간들을 나만의 구도로 마음껏 기록해 본다.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보통의 파리를 만나고 싶다면 누구라도 이곳을 거쳐가야 한다. 파리와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거창하지 않아도 저마다 이야기가 하나쯤은 녹아있는 공공의 정원. 사시사철 모두에게 따사로운 빛과 공간을 내어주는 이 화폭 위에서... 나의 여행길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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