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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Aug 11. 2022

기도로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The Shrine of Our Lady of Matara_해남 산정성당

부서지는 바다 거품이 물밀듯이 들이치는 스리랑카 최남단 마타라. 시즌이 아닌 남부 바다는 겁이 날 정도로 잔뜩 성이 나있다. 유원지처럼 잘 조성된 바닷가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 연은 높이 날고 쉴 새 없이 몰려드는 파도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그 거친 인도양을 100m 앞에 마주 보고 선 가톨릭 성지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강인한 어머니가 빛의 등대가 되어 수호하는 성전.  스리랑카 골 교구 남쪽 끝에 위치한 마타라 성모 성지에는 거대한 바다의 격랑을 온몸으로 맞으며 새겨진 상처, 기적의 이야기 그리고 성모님이 계신다.


파도를 세 번 건너온 기적의 성모님


마타라 성전에는 성모님과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 성전에 모셔져 있는 목각으로 만든 성모자상은 세 번이나 인도양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왔다. 성모님이 처음 오신 건 400여 년 전으로 마타라 인근 웰리가마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상자에서 발견하면서 부터였다. 변형되기 쉬운 목각이었음에도 바닷물에 닿지도 않고 온전한 모습이었던 성물은 이후 지금의 마타라 성모 성지에 봉헌됐다. 얼마 후 네덜란드 가톨릭 박해로 성전에서 잠시 모습을 숨겨야 했지만 결국 성모님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00년도 초엔 무려 3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신자들과 순례객들의 간절한 손길로 낡고 색이 바래져 보수를 위해 벨기에로 보내지기도 한다. 당시 콜레라 전염병이 남부 지역 전체를 휩쓸면서 마타라 사람들은 성모자상을 모시고 가두 행렬에 했는데 며칠 후 해당 지역의 위험이 종식되면서 기적의 성모님으로 불리게 된다. 보수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던 성모님은 다시 한번 폭풍우에 분실되고 실제 조각상이 훼손되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그 길고 먼 여정에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2004 12 성탄 다음날 주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쓰나미가 남부 해안을 들이닥치며 아침 미사가 집전되고 있던 성전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의 내린 폭우로  바닷물이 성전을 잠식하고 주차장의 차가 밀어닥쳐 성전 건물을 부쉈다. 본당 수녀님을 포함한 24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제대 위에 성모자상도 물에 떠내려가 분실되었다. 하지만 기적처럼 바닷물에 휩쓸려간 성모자상이  손상 없이 발견된다. 이렇게 파도를 건너 무려 세번이나 성모자상은 제대 위로 기적처럼 귀환하셨다. 


희생이 있어 기적도 있었다


18센티 정도의 아담한  성모자상 조각의 받침대에는 이렇게  번의 파도가 물결치고 있고 오늘도 별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의  밑에 모여 기도와 기적의 은총을 하고 있다. 2007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마타라 성지는 참사  복구를 마쳤지만 성전 곳곳에는 그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대 오른쪽에는 파도에 휩쓸려 양팔만 앙상히 남은 십자고상이 걸려있다. 깨져버린 주님의 몸은 십자가  유리함에 보관 중이라는데 어쩐지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지도 모르고   명의 자식이라도  살리고자 간절히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계시던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분의 희생을 기적이라고 부르는지도

개인적으로 희생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언제나 슬프고 무거운 화두였다. 내가 가진 기회를 누군가를 위해 포기해야만 가능한 마음. 욕심이 많아 어느  하나  손에  것을 놓기 힘든 나에겐 그저 이상적인 누군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귀한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마음이야말로 진정 나를 사랑으로 채우는 일임을 아주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비워지는 만큼  충만하게 채워주심을 안다. 희생 앞에 고귀함, 숭고함이 붙는 이유는 어쩌면 인간이 가장 완벽하게 신을 닮아갈  있는 길이여서가 아닐까. 나도 매일의 작은 희생 속에 기적을 맡겨놓은 듯 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분께서 언제까지나 매순간 다정한 눈빛으로 응원해 주실 것이라 믿으면서.

나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다. 허나 그대처럼 나아가는 이는 드물다. 보통의 사람은 그 기적의 순간에 멈춰 서서 한 번 더 도와달라고 하지. 당신이 있는 걸 다 안다고. 마치 기적을 맡겨놓은 것처럼. 그대의 삶은 그대 스스로 바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대의 삶을 항상 응원했다.              - 도깨비 4화 중


우리가 만들어 가는 기적 


그리고 한국의 최남단에도 기적의 손길로 다시 우뚝 선 성당이 있다. 광주교구 해남 천주교 땅끝성당이다. 1993년 마을 초입 산정리에 위치해 처음에는 산정공소로 불리다 1995년 땅끝공소로 이름을 바꿨다. 3명의 할머니가 모여사는 소박한 공소로 시작했지만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2012년 8월 27일 밤, 태풍 볼라벤이 불어닥치고 성당은 하루 아침에 내려 앉았다. 예수성심상은 땅에 떨어졌고, 공소 지붕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형체도 없이 무너진 건물에 50명 남짓 공소 어르신들은 신앙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하느님의 집을 새로 짓는데는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한다. 해남성당 주임 신부님이 사제 생활비를 내놓으시고 신자들은 인근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건축비를 보탰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마늘밭, 대추밭에서 땀흘려 일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당 텃밭에서 키운 오이, 돌김, 맷돌호박을 팔아 건립기금을 조성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어놓는 많은 이의 희생으로 땅끝 공소는 다시 기적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고통 속에서도 더 간절하고 단단해진 공동체의 화합이 다시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축복을 선물한 것이다. 


기적은 오늘도 이곳에서 자라난다


성전이 왜 이리 반짝이나 했더니 혼배미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랑카에서 혼인 성사를 보는 건 처음이라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살금살금 둘러보았다. 신랑 신부를 위해 마련해 놓은 정성 어린 선물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약속들을 가까이서 보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어쩜 매번 랑카의 성당은 방문할 때마다 이토록 척박한 토양에서도 신앙이 자라나고 희생으로 피워낸 기적을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는지. 이런 작은 기적들을 마주칠 때마다 큰 용기가 된다. 아직도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이렇게 느낄 수 있기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성당 제일 높은 곳에서 성모님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가장 아픈 곳에 그리고 위험한 곳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마음, 파도를 건너온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북한과 가장 가까운 안보 전망대라는 태풍 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보고 선 거대한 성모상을 마주했었던 기억이 있다.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를 청하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픈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시는 순백의 모습이 오래 잔상처럼 남았었다. 그런데 먼 이국 이곳에서도 성모님은 성전을 잡아 삼킨 바다를 향해 기도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성모님의 기적에 멈춰 또 다른 기적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 나간다. 교회를 중심으로 쓰나미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한 자립시설을 만들고 어려운 환경의 청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며 치유의 과정을 함께 해온 것이다. 아픔의 역사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잊지 않으면서도 담담히 새 성전을 가꾸며 회복해 온 사람들의 성전. 왜 성모님이 그렇게 거친 파도를 건너 어렵게 이곳으로 다시 오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쩐지 오늘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디를 더 깨어있는 기도 속에 청해 보고 싶다. 기적이 온다면 내 삶 전부로 안아줄 수 있도록. 기도 속에 기적을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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