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Anthony's Shrine_중림동 약현성당
2019년 4월 21일.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빛의 날이 다가왔다. 바닷가 가까운 성 안토니오 성당엔 아침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평화로운 부활 미사가 집전되는 성전 그 가운데 난데없이 폭탄이 터진다. 연속 폭탄테러의 시작이었다. 미사에 참여했던 56명이 희생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전국 8곳에 잇달아 발생한 테러에 나라 전체가 비탄에 잠겼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콜롬보 폭탄테러 그 중심의 성 안토니오 성당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다. 그동안 스리랑카를 종횡하며 다녔던 성당 중 북부주 마두성지에 이어 두 번째로 경비가 삼업 했다. 꽤나 복잡한 보안 검색대와 몸수색을 통과해야 성당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지키는 무장 군인들 그리고 내부 촬영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다행히 올 때마다 성당 마당엔 항상 신부님이 나와 계신다. 처음엔 어색해서 눈인사만 씽긋하고 지나쳤는데 몇 번 오다 보니 “또 왔니?” 하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주신다. 성 안토니오 성당은 원래 모두에게 개방되어 종교에 관계없이 축복을 구하는 성지였다고 하는데 성당 마당을 떠나지 않는 신부님의 선한 미소를 보면 왜 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그 때문에 테러 때도 신자가 아닌 많은 시민들이 함께 희생을 당했다.
성전에 들어서기 전 입구 맞은편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꽃이 헌화된 성모님, 테러 때의 참상이 그래도 기록된 사진 그리고 빼곡한 이름이 적인 추모비가 놓여있다. 그 이름을 조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반복되는 이름들에 마음이 멈칫한다. 일가족이 모두 희생된 흔적이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놓을 수 없는 듯 미사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신자들은 이곳으로 와 정성스레 기도를 드린다.
조심스레 들어선 성전. 이제 많이 회복했지만 성당의 상부는 마치 체육관을 연상시키는 듯한 흰색 철물로 지탱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큰 재해가 있을 때마다 피난공간으로 대형 체육관이 등장해서였을까? 화려한 벽화와 어쩐지 이질적인 철물 속이 마치 하느님의 보호 아래 쳐진 임시 초막아래 들어온 것만 같았다. 바닥 위에 남아있는 총탄자국 그 위에 잔잔히 상흔의 떨림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한국과는 달리 신기한 몇 가지 다른 점들이 있는데 우선 성전 가운데 길을 가능한 밟지 않고 혹은 인사를 드리고 가는 우리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성전 뒤에 있는 성상에서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제대 앞까지 계속 전진하여 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드시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도 빠지지 않고 온몸을 다해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면 놀랍기도 그리고 때론 경이롭기도 하다.
생명의 빛을 이곳에 허락하소서
그리고 여느 성당과는 달리 이곳 성당에서 발견한 특이한 점도 있는데 성전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남녀 구분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사실 신자석엔 모두가 구분 없이 함께 앉아있기 때문에 따로만 들어가는 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었는데 테러 폭격 이후 남성과 여성의 몸을 따로 수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치라고 한다. 믿음의 공간에 아직도 아픔이 뿌리내려 있다. 미사가 끝나고 보좌 신부님께서 열린 장소에서 고해성사를 주신다. 언제 어디서나 신부님에게 다가가 기도를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한국도 1998년 천주교 역사인 약현성당이 불에 타 전소되고 주요 유물들도 불에 타버린 아픔을 갖고 있다.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에서 만난 성모님은 성당 안 모든 것이 소실된 가운데 아기 예수님을 안고 불길 속에 그을린 채 그 자리에 서 계셨다고 한다. 멀리서 예수님의 수난을 지켜보시며 세상에 어둠이 내리고 다시 아드님이 살아나시기까지 불타는 고통을 감내하셨을 불길 속에 성모님이 떠오른다. 장궤에 무릎을 꿇고 나를 낮추며 온 마음을 다해 드렸던 약현성당에서의 미사도 함께 말이다.
미사를 마치고 입구 성 안토니오 성인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 성상 뒤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성모상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성모님의 코가 사라져 있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가까이 사랑을 전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색이 해지고 닳아진 성상에서 어쩐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을린 성전에도 신앙은 다시 자라나고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 부활은 찾아온다. 랑카 성당에서 배운 감사한 마음을 청명한 하늘 위로 되새기며 오늘 나에게 허락된 생명의 빛에 감사를 드린다. 모두 부활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