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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Apr 29. 2022

우연인 듯, 운명처럼

Our Lady of Mount Carmel Church Batepola

모든 때가 우연처럼 맞아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는데 오늘 하루가 이 시간을 위해 준비되고 흘러온 것만 같은 느낌. 나에겐 올해 성 금요일이 꼭 그랬다. 긴 여행길이 주는 작은 선물이자 이곳 사람들의 신앙을 그저 관찰하는 것이 아닌 교회의 일원으로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축복은 랑카의 험란한 도로 사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리랑카는 새로운 곳에 발을 내딛이면 또 다른 대륙을 탐험 하 듯한 신비로운 섬이지만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길이 대부분 왕복 2차선이고 좁고 꼬불꼬불한 도로라 이동 시간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저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기에 차멀미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폴루나루와에서 니곰보로 내려오는 길.. 오는 길에 공작새 가족도 보고 야생 코끼리도 만나고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넣으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늦게 목적지로 향해가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만 하면 되는지라 잠깐씩 눈도 붙이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거리에서 낯선 행렬을 마주한다. 흰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낯선 악기 소리 그리고 어린이 천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가운데 그 뒤를 따르는 장례행렬이라.. 그리고 등장하는 성당! 오늘은 성금요일.. 이곳에서 무언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직감했지만 모두가 지치고 피곤한 귀갓길..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귀로 말해요!! Slow down please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 기적의 행렬

그때 머뭇거리는 나를 먼저 꺼내 주는 목소리! 동행 그리고 기사님이 여기는 꼭 내려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잡아끌어 주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아주는 사람들과 이렇게 감사한 여정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핑그르 돈다. 그러나 울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흰 깃발이 펄럭이고 학교 운동회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새하얀 물결이 넘실댄다. 그동안 셀 수 없는 인파를 만나왔지만 이렇게 작은 지역 성당 내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많은 신자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해 질 녘 어스름 가장 좋아하는 핑크와 보라가 섞인 하늘빛 위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성전 각자의 위치에서 그분을 뵙고자 모여든 마음들은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이 된다.

성전 어디를 가도 대기는 필수
기다림이 순례가 되는 이곳


모든 이의 분주한 움직임은 선율이 되어 한 편의 장엄한 교향곡이 된다


오늘이 성 금요일이라고요?


분명 성 금요일은 비탄이자 수난의 날이다. 세상은 빛을 잃었고 이를 애도하기 위해 사람들은 단식을 하기도 한다. 이 말 할 수 없는 슬픔을 침묵 속에 기억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좀 다르다.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슬픔 안에 작은 희망을 머금고 있으며 다가올 환희를 맞이하기 위한 작은 축제 날 같기도 했다. 성당 입구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있다. 신자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 듯 간단한 빵과 음료를 나누고 함께 먹는다. 성당 안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작은 빵 한조각도 나눠먹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나누다 못해 목숨까지도 내려놓은 주님의 장례날과 어쩐지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그분이 어디선가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계실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모두에게 나누어지는 작은 양식
사랑방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간식도 나누고

성당 왼편에는 주님이 내려온 십자가 그리고 이를 직접 숭배하고 찬미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성당 마당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합창단이 쉼도 없이 영롱한 목소리를 높인다. 드디어 예수님을 성전 안에 다시 모시는 그리스도 수난 예식과 같은 행렬이 시작되었고, 차 안에서 멀리 보았던 그 모습이 다시 한번 재현되고 있었다. 다시 보니 로마군 복장을 한 사람들과 예수님이 쓰고 계시던 가시관과 십자가에 박힌 못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리고 행렬의 초입에는 복사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동그랗게 생긴 실태래를 감는 듯한 악기로 소리를 내는데 윙윙 거리는 이 소리는 울음,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맑고 고운 소녀들의 합창
이 더운 날씨에 모두의 성금요일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봉사자들..

이번엔 도저히 이 열기와 감동을 눈으로만 담을 수 없어서 가만히 뒤로 가 조용히 줄을 서 보았다. 가시관과 못에 손을 대고 예수님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나아간다. 대기행렬에는 세상에 나온 지 100일도 안 되는 아가도 함께 있었는데, 아직 눈도 잘 못 뜨는 아기가 이불에 쌓여 잠들어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오래전 유아세례를 받던 사진 속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신앙이라는 게 조금씩 마음으로 이해되는 요즘이다. 아가에게 앞으로 이날의 기억은 없겠지만 앞으로 자라나면서 필요한 뜨거운 신앙의 자양분은 듬뿍 흡수되었으리라!

처음해봐서 뭔가 쑥스러운 뒷모습
작고 소중한 존재들

드디어 먼 길을 돌아 예수님이 성전 안으로 들어서시고 사제 그리고 신자들이 이어 그 뒤를 밟는다. 모두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그분께 인사드릴 채비를 한다. 발 위로 세 번 입을 맞추며 기도로 나아가는 사람들. 모든 의식은 진중한 분위기 아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치러진다. 그 위로 곧 찬란한 모습을 다시 드러낼 그분의 형상이 눈 안에 들어온다.

다시 성전의 주인이 들어오시는 예식
모두에게 허락된 그분께 입 맞추고 찬미하는 시간

세상에 어둠이 덮이고 


한국에서도 우연처럼 신비한 성당을 발견한 적이 있다. 1호선을 타고 용산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처음엔 절인가? 싶은데 십자가? 라며 머리 속에 물음표가 생기는 공간이 있다. 새남터기념성당. 새남터는 이름만으로 한국 천주교 신자에게 가슴 아픈 공간이다. 조선초기 국사범을 처형하는 공간이었지만 4대 박해동안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 순교한 열 네분의 성직자 중 열 한 분이 순교한 형장으로 잔혹함으로 세상의 빛이 사그라 들었으나 성혈의 땅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성당마당에 들어서면 우선 왼편에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의 흉상이 보인다. 한국 최초의 외국인 신부님으로 탄압중에도 조선에 들어와 전교활동을 하셨지만 끝내 이곳 새남터에서 순교하셨다. 높고도 파란 하늘, 한강에서 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소풍을 나온것만 같았지만, 성당 중앙에 붉은 색으로 적힌 "이곳은 새남터 형장입니다" 라는 문구에 마음이 철렁인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이 살던 곳도 아닌 이 먼 이국의 땅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올려보았을 하늘은 어떤 표정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다시  


그렇게 열심히 사진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우리를 찾으신다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 나갔다. 오늘도 외국인은 낯선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냈나 보다.  어디서 왔냐 물으시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유달리 신부님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연이은 시위에 콜롬보 대교구 추기경님 외 주교단, 사제들이 길 위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신부님은 ‘촛불집회’를 언급하며 평화가 깃든 행진에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많은 용기와 힘이 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먼 곳에서 온 손님에게 작은 비스킷을 나눠 주셨는데 오랜만에 신부님께 받은 그 비스킷이 꼭 영성체인 것만 같아서 먹지도 못하고 결국 손에 고이 모시고 왔다.

열정이 넘치시는 Father 그리고 영혼의 비스킷!


자색 빛으로 한번 더 물들어 가는 하늘. 우연처럼 들른 이곳에서 참으로 많은 신비를 경험한다. 신앙의 깊이가 있다면 나는 지금 발이 닿지도 않을 심해를 헤엄치는 기분이다. 그분의 죽음이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었음에 정말 ‘Good Friday’가 된 것이라면... 경건한 마음가짐 속에 조금 더 소리 내어 마음을 표현하고 열정 가득한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 이곳을 주님은 한없이 넓은 품으로 안아주실 것만 같다. 


랑카의 성당을 다니며 매번 느끼는 것은 이보다 어떻게 더 뜨겁게 자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언제나 조금은 소극적으로, 선을 지켜가면서, 해야 할 도리에만 급급했던 나의 신앙에 부끄럽지만 마주해야 할 거울이 되어주는 사람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용기이자 또 다른 이름의 고백이겠지. 이제 어디에 있어도 (앞으로 또 어떤 멋진 날들을 만날진 모르겠지만) 성금요일 하면 오늘 그리고 이 자색 하늘이 떠오를 것만 같다. 우연인 듯 운명처럼 이렇게 만나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 내게 다시 한번 허락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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