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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Apr 12. 2022

당신의 빛을 비추소서

St. Lucia's Cathedral, Kotahena


깊어가는 사순. 주일미사는 매주 평화방송 매일 미사로 드리지만, 부활 전 고백성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다. 직접 성사표를 받진 않았지만, 신앙의 관성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게 날이 가면 갈수록 마음 한구석이 초조해진다. 이렇게 꾀죄죄한 영혼으로 교회 전력 중 가장 큰 축일을 맞을 순 없는데. 이번 부활절은 특히 내가 세상에 나온 날과 같은 날이기에 더욱이 묵은 죄를 씻어내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하늘 아래 콜롬보 곳곳에선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지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성당 문을 두드렸다. 

    

콜롬보 전역에 많은 성당이 있지만 오늘 찾은 곳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콜롬보 대교구 주교좌 St. Lucia’s Cathedral 대성당이다. 콜롬보의 북동쪽 코타헤나에 위치한 이 대성당은 수년간 주교좌성당으로서 스리랑카 역사의 밀물과 썰물을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시대가 만든 침식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7세기 조용한 마을이었던 이곳의 언덕은 신앙의 작은 모임 장소가 되었고, 네덜란드와 영국군의 전쟁이 발발때 콜롬보 시민들을 전쟁으로부터 피신시켰다고 하니 어쩐지 우리나라의 명동성당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뚝뚝이을 타고 성당을 찾아가는 길. 행정구역이 Colombo 13이라 성당은 생각했던 것보다 도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한 고층 건물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평소에 보기 힘든 로컬 함이 물씬 풍기는 시장들을 지나니 새로운 길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거리에는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스리랑카는 불교의 색채가 옅어지기 시작하면 이민자와 약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항상 가톨릭이 있다.


믿음이 자라나는 소리


주교좌성당이니 지난 부활절 테러의 여파로 입구가 삼엄할 줄 알았는데 비교적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성당 마당은 바로 연결되어 있고 광장처럼 시야가 탁 트여 성당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성 루시아 성인과 성모님께 차례로 인사를 드렸다. 성전 앞엔 십자가에 둘러싸인 자색 깃발이 나부끼며 지금이 사순시기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뒤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사 시간을 두 시간 정도 앞둔 시간인데도 성당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한 모습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지역 공동체 이곳에 정주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순 그리고 미사준비로 나란히 성당에 들어서는 가족

성당을 정면에서 보면 교황님이 계신 성 베드로 성당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성전의 미색 얼굴이 보인다. 그 위로는 성모 마리아, 성 루시아,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일곱 성인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콜롬보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리고 십자가 윤곽으로 수 놓인 은색 돔이 성전 뒤편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이 돔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공습으로 손상을 입어 성전의 구조에 큰 흉터를 남겼다고 한다. 비록 돔은 수리되었지만 오랜 영적 중심지인 만큼 성전 자체를 재건하기 위한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가 아직 진행 중이다.

하늘을 받들고 선 성인 성녀들을 올려다본다
돔은 재건되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성전은 아직 치료 중이다

오늘은 성물방 문도 열려있었다. 가톨릭 관련 신문, 알록달록 형형색색을 자랑하는 묵주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특히 이곳의 잇템은 형광인데 성모님 상도 묵주도 모두 노랑 주황 형광색이다. 웃프지만 단전이 일상화된 요즘 랑카에 집마다 기도를 위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성전 밖에는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하나 보니 소규모로 진행되는 성경 공부 모임이었다. 이 역시 본당 속 서로에게 가르침과 배움이 되던 명동성당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매주 교육관에 모여 청년 성서모임 공부를 하고 솔봉이 친구들을 위한 교안을 만들던 그때의 우리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이 났을까?

참새 방앗간 성물방 그리고 거울처럼 바라보는 소규모 공동체 모임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명동대성당에도 주일학교가 있다. 초등부와 아동 발달장애인을 위한 솔봉이 주일학교를 함께 운영했는데, 현재는 성인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라파엘과 솔봉이가 통합되어 아미쿠스라는 주일학교를 운영 중이다. 솔봉이 시절 명동성당은 우리의 주무대였다. 주일이면 꼬스트홀 2층 소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아이들과 교육관에서 교리수업을 진행한 다음 성모 동산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뛰놀곤 했다. 매 달 대성전에서 함께 미사를 드릴 때면 줄을 서던 동쪽 나무, 가족들 포함 대성전 지정석까지 (인기석이기에 교사들의 기민한 자리 사수가 중요하다) 성당 구석구석엔 아직도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 녹아있다. 


보물들이 이끄는 성전


성전 입구에는 잠자는 요셉상이 깜짝 우리를 맞아주신다. 그리고 그 위로 앳된 모습의 성모 마리아 님이 별처럼 올려다 보인다. 그동안 수많은 마리아상을 뵈었지만 유달리 아리듯 가슴이 뛰었다. 화려한 장식도, 큰 표정도 없는 이 단아한 모습에 살아 숨 쉰듯한 신비로움이 서려있는 것은 왜일까. 성소의 왼편에는 또 다른 성모님도 계신다. 이번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검은 피부의 독특한 블랙 마돈나 상이다. 이 성모님은 교구의 중요 연례행사 시 항상 행렬에 동행하여 ‘코테 헤나의 성모’라고 불린다고 한다. 고난을 받는 이들의 구원의 어머니라는 블랙 마돈나 상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직도 신앙인으로서 배워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어떤 모습으로도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성모님

성전 내에는 조금  어린아이들의 성경공부가 한창이다. 초등반 수업인 듯한데 오늘도 역시나 외국인이 자꾸 왔다 갔다 하면서 사진을 찍어대니 시선이 쏠리는  같아 선생님한테 미안한 마음이다. 그중 장난기가 그득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가 햇살에 비쳐 유난히 빛났다. 결국 선생님한테 걸려 성경을 낭독하는데 또박또박 영어로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가 너무도 맑아서  소절 성가를 듣는 것만 같았다. 나도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말씀을 듣는다. 적막함 만이 감돌  같던 성전 안에는 소리 내어 묵주기도를 하는 자매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형제님, 그리고 아이들의 성경을 읽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미리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이미 성전을 가득 메우고 있다.

햇살이 들어오는 성전엔 미래의 씨앗들이 자란다

그리고 성당 양측 벽면 통로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오픈형 고해소가 놓여 있었다. 이런 간략 버전은 처음인지라.. 과연  고해소가 현재 진행형 성사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 공간인지 한참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서 성사를 봐야 한다면  같은 내향형 인간은  시간쯤 고민하며 성전을  바퀴 정도 돌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성당 벽면에는 교황 요한 2세로부터 시복 받은 Joseph Vas 신부님의 청동화도 함께 있었다. 1995 교황 바오로 2 직접 방문 당시 주신  축성된 것으로 이곳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스리랑카 가톨릭에게 중요한 공간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죄를 전체공개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스리랑카의 최초 성인 조셉 바즈 신부님

제단은 다른 화려한 곳에 비해 정말 있어야  것들만 존재해서인지 유난히 예수님이 가장 잘 보였다. 대리석으로 이뤄진 3 층의 바닥 그리고 티크 나무로 정교하게 조각된 교구장님의 보좌 카테드라(Cathedra)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명동성당엔 재단 뒤에 반원형의 열 네분의 사도화가 있다면  이곳에는 성인들이 신자들 속으로 들어와 계신다. 성당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엔 열 두 사제와  알로이시오, 프란시스 하비에르, 빈센트 드폴, 세실리아,  요한 세례자  라살 성인 성녀들이 입체적인 표정과 각자의 영성을 담은 모습들로 함께하고 계신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교육받을  있도록 평생을 헌신한 요한 세례자  라살 성인과 빈민들을 예수님과 같이 섬기던 빈첸시오   성인을 이곳에서 마주할 줄이야. 성인 성녀들의 숭고한 삶의 궤적이 가깝고도 친근하게 느껴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상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지 저절로 상상이 된다.

장엄하고도 절제된 제단 그리고 주님
두 팔 벌려 마중 나와 계신 성인들
각 기둥마다 자라한 성인 성녀들 그리고 세상의 약자를 사랑한 성인이 이곳에 계신다


다시 길을 나서며


결국 고해성사는 보지 못했다. 성전을 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들여다본 교육관. 이미 신앙은 그들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름이 빛을 의미하는 성 루시아 대성당에서 오랜만에 한 본당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황폐한 토양 속에서도 자생하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힘이 난다. 그리고 역시나 이들은 자신의 안위가 아닌 나보다 소외당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신앙인이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사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베움이 피어 나는 교육관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본당은 지난 30년간 'Home for Elders'를 운영해 오면서 빈첸시오회와 함께 노인들에게 쉼터와 생필품을 제공하고, 지역개발센터를 통해 'Montessori'를 만들어 145명의 빈곤선 이하 가정의 아들들에게 유아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또 3개의 의료 센터를 만들어 무료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세 팀의 의료자원봉사자가 집에 방문하여 센터에 방문할 수 없는 사람을 돌본다고 한다. 성인을 그저 마음으로만 섬기는 것이 아닌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이 얼마나 큰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일음을 알기에 마음이 먹먹해온다. 다시 세상 속으로 나서는 길 그들의 아름다운 걸음에 가만히 마음 한켠을 내려놓는다. 언제나 당신의 빛이 이곳을 가득 비추기를, 벚꽃 흩날리듯 사랑이 내려오기를 기도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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