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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Apr 17. 2022

이제와 항상 영원히  

St. Sebastian's Church, Katuwapitiya

나에게 있어 랑카의 첫인상은 낯선... 반가움이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을 빨리 감기 한 탓인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혀온다. 특수 입국절차 절차를 받고 짐은 가는 곳마다 방역 스프레이로 절여지고 있었다. 무장한 군인이 직접 인솔하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길 오랜만에 이국적 풍경에 긴장과 설렘이 오묘하게 공존한다. 미지의 세계로의 첫걸음 그런데 그 길 위에는 예상했던 분이 아닌 마리아님과 예수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그것도 가는 길마다 아주 많이. 눈물이 왈칵 터질 것 같은 안도감.. 그건 나의 첫 보금 자리 니곰보(Negombo)가 내어준 품이었다.


격리가 끝나고 수도인 콜롬보에 와서도 항상 마음 한편을 비워두었다. 그리고 지난해 성탄절 순례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다시 찾았다. 2019년 부활절 폭탄테러가 있었던 St. Sebastian 본당에서부터 St. Mary 대성당까지 신앙이 비단길처럼 펼쳐진 이곳을 걷고 또 걸었다. ‘스리랑카의 작은 로마’로 불리는 지역답게 골목 구석구석마다 다른 모습의 구유가 놓여 있었는데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반나절 동안 100개는 넘게 보았던 것 같다. 신앙이 나요 내가 신앙인 것만 같은 신자들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보여준 믿음의 하모니는 내 안에 메아리가 되어 더 낮은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고 울려 퍼졌다.

그러니 부활절 다시 이곳을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실 연일 이어지는 대규모 시위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가장 오래 마음을 두드렸던 성전에 잠시 발자국만 남기려 했다. 그러나 역시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4개월 전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깊이로 나를 끌어당기는 빛의 신비 그리고 교우들. 마치 호그와트의  비밀통로를 통해 이동하 듯 한 번도 와보지 못한 내밀한 장소로 옮겨지는 것만 같은 느낌.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것들,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그 자리에서 서서 한참을 울었다. 영혼이 시냇물에 씻기듯 정신이 맑아지고 그렇게 고해소에서 나오 듯 마음엔 평화가 찾아왔다.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 주었을 때..


크리스마스 니곰보의 첫 행선지인 이곳은 입구에서부터 창의력이 넘치는 트리와 구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빈병과 코코넛 껍질을 색칠해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트리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구유. 가는 곳마다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 그득 묻어있어 만드는 과정이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반짝거리는 것들에 감탄하며 잠깐 들러가는 본당으로 사랑이 넘실대는 본당으로 나는 이곳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왜인지 이번 니곰보 부활 성당 여행을 기획하며 제일 먼저 이 성당이 떠올랐다. 또 어떤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부활의 기쁨을 표현했을까? 그 어떤 전시회보다 기대되는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성탄을 맞은 St. Sebastian 성당은 오색으로 반짝인다
뭘 좀 아는 까마귀
그리고 저마다 다른 테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구유

다시 온 St Sebastian Church 성당엔 입구에서부터 무장한 세명의 공군이 검문을 한다. 조용한 성 토요일 아침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은 장식들에 역시 탄생과 죽음의 무게는 다르구나 짐짓 짐작하며 성당을 한 번 둘러본다. 작년과 다른 건 더욱 많은 신자들이 성당을 채우고 있었다는 것. 자연스레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니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세신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약식으로 서로를 씻겨주는 별도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여러 성전을 다니며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말을 걸어준 분은 없었는데 한 자매님이 먼저 웃으며 다가오셨다. 어디서 왔는지, 무얼 찾아왔는지,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이방인이 아닌 자매로 정겹게 손잡아 주는 그 마음이 커다란 아이의 눈망울만큼이나 투명하다.

부활 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는 사람들 
눈에 별이 뜬 아이들이 자라나는 거룩한 본당


눈을 뜨고도 큰 산조차 보질 못한다


성전 안엔 주님과 모든 성인들이 잠시 몸을 감추셨다. 성전 밖에서는 부활 행사를 준비하는지 시끌벅적하고 아이들이 모여있는 창문 옆으로 이상한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한파가 온몸으로 불어오듯 모든 감각이 쭈뼛 선다.  다음 행선지인 St. Sebastian Sea Street 성당에서 찾으려 했던 그 지워지지 않는 흉터인 걸까?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일시정지 상태로 얼어붙어 버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상흔이 함께하는 프레임을 렌즈 넘어 눈에 담으며 쏟아지는 마음을 그렇게 한참 흘려보냈다. 막연히 폭탄이 터지고 115명의 생명이 사그라든 공간은 서늘하고 황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예수님은 성전을 잠시 비우셨지만 그 상처 위로 조용히 자신을 비추고 계셨다.


희생자들의 피와 폭탄 파편으로 상처 나고 얼룩진 주님을 뵙는다. 그 앞에는 여린 순백의 꽃이 봉헌되어 있다. 2014년 4월 16일 한국에서도 304개의 꿈이 바닷속으로 수장되었다. 이 성전 역시 아동 2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쳐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고 한다. 그 아픔도 함께 기억하며 기도를 드리자니 몇 해 전 아산 공세리 성당 성모님 상 앞에 봉헌되었던 꽃잎들이 떠오른다. 지금도 아스라이 흐드러진 벚꽃으로 아름다울 그곳엔 슬프도록 아름다운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을까? 알고 나니 퍼즐처럼 모든 것들이 맞춰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해도 참 더디다 싶은데 이런 부족한 나를 어찌 이렇게 매만져 주실까..

2016년 4월 공세리 성당 성토요일에
노란색 대신 하얀 리본이 물결친다 

성당 뒤편엔 청년회와 신부님이 부활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성전 바닥에는 멍멍이들이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고 아이들의 행복한 에너지와 웃음소리가 성당 가득 울려 퍼진다. 이곳에 나의 일부를 두고 싶어 아주 작은 정성을 보태본다. 땀에 젖은 등 그리고 까맣게 탄 거친 손이 어쩐지 부끄럽지가 않다. 더 거친 태양 속에서도 묵묵히 이 길을 걸으며 순례 하 듯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확신이 든다.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수도 씻을 수 없는 상처 속에서도.. 부서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이토록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쩌면 이미 부활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전할 수 있는건 기도 뿐.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이곳에 속한 모든 이에게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아멘 

왁자지껄한 성당 뒷마당 성극을 준비하나 보다
Caritas는 언제나 나에게 사랑이다
그분의 손을 잡고 여기 이름이 남은 모두가 평안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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