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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야 함께 할 수 있다

l' Opera National de Paris

by Yule

이번 여행은 좋아하는 것에 더 좋아하는 것을 더하는 여정이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에 공연이 빠질 수는 없는 법. 지난여름에는 아쉽게 지나쳤던 발레 공연을 보기로 했다. 발레 수업에서 돈키호테 키트리 안무를 연습하고 있던 중이라 꼭 살아있는 공연 실황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접하지만 경쾌한 분위기에 그랑 파르되 (grand pas de deux)가 유명한 파키타 (Paquita)를 예약했다. 콩쿠르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날이후 틈날 때마다 테마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그 세계 속으로 천천히 빠져 들어갔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날. 평소보다 예쁘게 옷도 차려입고 부푼 마음으로 오페라 가르니에에 도착했는데 글쎄 장소를 잘못 찾아왔단다. 오늘 공연이 이뤄지는 장소는 바스티유 오페라 (Bastille Opera) 극장. 다행히 30분 먼저 도착했던지라 부랴부랴 이동해서 간신히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름 꼼꼼하다고 자부하는 성격인데.. 장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니. 찾아보니 바스티유 극장은 1898년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새롭게 설립된 현대 대극장이다. 이제 파리 오페라 본부도 이곳으로 이전을 하였지만 아직은 화려함과 건물 자체가 역사인 가르니에가 파리 오페라의 상징으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공연은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료되어 잠시 시공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처음엔 다채로운 의상과 무대장치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무용수들의 섬세한 표정과 연기에 푹 빠져 인생 드라마 한 시리즈를 밤새 정주행 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평소엔 무용수들의 동작이나 움직임을 분석적으로 보고, 화려한 베리에이션과 테크닉에 감탄을 했다면 이번엔 그냥 그 감성에 빠져들어 넋을 놓고 감상했다. 무엇보다 남녀 에투알 (수석무용수)들이 선보이는 그랑 파르되는 그저 자신의 장점만을 뽐내는 것이 아닌, 경지에 이른 두 존재가 함께 만들어가는 하모니 그 자체였다.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공연이 끝나고 나서 한참을 앉아 여운을 느끼며 공연장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현대적이지만 어쩐지 고풍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배 모양 같이 아늑한 오케스트라 자리도 눈에 들어온다. 주말이 아닌데도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가득 채운 좌석들. 발레에 대한 충만한 기쁨을 이렇게 가득 채워본다. 이 감상이 사라지기 전에 다이어리를 꺼냈다. 나도 언젠가 천천히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발끝으로 세상을 지지하며 독무를 출 수 있는 자신을 만나겠노라고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또 나의 힘을 통제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결을 맞춰가며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적어보았다.

그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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