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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Sep 23. 2022

사라진 숲의 아이들

손보미


p382

남은 아이와 보내진 아이.

죽인 아이와 죽은 아이.  



아버지는 독일에서 유학한 서울 유명 사립대 독문과 교수, 어머니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저명한 요리사. 그들은 단 한 번도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아이를 다그친 적도 없었다. 딸을 이해시키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딸이 성인이 된 후에도, 잦은 이직과 분란으로 안정을 찾지 못해도 그저 지켜만 봤다. 그들은 마치 육아서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한 이상적인 부모였다. 


여섯 살에 입양된 채유형은 부모님의 지극 정성 안에서 성장했다. 다만 부모는 유형을 입양한 후 단 번도 이 사실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유형의 소원은 부모의 '진짜' 딸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의 서재 책상 서랍 안에서 어린 그녀가 보육원에 가기 전의 친부모와 오빠라고 추정되는 여러 장의 가족 사진을 발견한 후 자신이 친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부터 소원을 빌지 않았다. 채유형은 자신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움을 느낄 때마다 그 끝에서는 늘 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럴때마다 직장을 그만두고 칩거했다. 이게 그녀가 안고 있는 루틴이다. 그녀는 이 루틴에서 벗어나고 싶다.








손보미 작가의 <작은 동네>를 읽었을 때 마음 속에서 작은 파동이 멈추지 않았더랬다. <작은 동네>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해당한 가족사를 그렸듯,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잊혀져 간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과 그로인해 절망과 열패감, 고통 속에 살아야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추리 형식으로 버무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작품은 심리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는 내내 독자가 양가의 감정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전반부의 의문은 윤종이 채유형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였다가 밀어낸 이유이고, 후반부에서는 유형의 친오빠가 가진 의도다.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가는 추리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그리고 독자가 마지막까지 과연 '악의惡意가 미치는 영향과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고립된 청소년들에게까지 '무전 유죄'의 논리가 적용되는 이 사회의 민낯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악의惡意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선택받지 못한 아이도, 선택받은 아이도 서로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운명. 죽인 아이도, 죽은 아이도 모두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세상. 채유형을 비롯한 심리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내면의 아이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어른 아이는 얼마나 많은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가능성만을 염두하기에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고 소중하다. 저마다 인생에 흉터 하나쯤 없는 이가 어디 있으랴만, 누구나 있는 흉터라고 가벼이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산만한 덩치를 가진 아이가 얼굴만한 손으로 엉엉 울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덩달아 울고 말았다. 


에필로그에서 유형이 부모님을 찾아가 화해 아닌 화해, 치유 아닌 치유를 명분으로 그간의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아서 좋았다. 무조건 모든 걸 풀어놓는 게 능사는 아니며 때로는 묻어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기도 하니까. 


손보미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101.

사람들이 원하는 건 모니터를 끄면 잊어버려도 되는, 그런 일회성의 진실이란 말이에요. 자기들은 안전한 세계에 속해 있다고, 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줄 만한 것!




#사라진숲의아이들

#손보미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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