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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Feb 06. 2021

디 에센셜 _ 버지니아 울프

단편소설 / 에세이


421.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읽는 것.

찬탄하지 않는 책을 찬탄하는 척하지 않는 것.

되도록 적은 단어로, 되도록 명료하게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쓰는 것.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난 버지니아는 아버지가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문학평론가였던만큼 집안의 분위기는 지적이었고 그에 대한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신질환 증세를 보일 정도로 상당히 예민한 성격에 의붓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겹쳐져 우울한 성정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버지니아는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는 규범에 따라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지만, 독서와 독학을 통해 지식을 쌓고 뛰어난 지성으로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 모임 멤버들은 기존의 권위에 저항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녀가 평생동안 성性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갖게 하고 자신을 객관화시키며 타인에 대한 입장에 공감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싶다. 


<디 에센셜_버지니아 울프>는 단편소설 네 편과 자기만의 방을 비롯한 짧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쉽게 만날 수 없는 버지니아 울프의 짧은 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짧은 글 안에서 이토록 핵심만 심어놓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일단 버지니아가 짚어낸 여성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단편소설 [유산]에서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은 아내가 유일하게 남긴 유산인 일기를 남편이 읽게 되고, 기혼 여성에게 있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내조라고 여기는 그는 아내의 외도를 납득하지 못한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정치가를 둔 남편, 여유로운 경제적 상황, 그녀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V양의 미스터리한 일생]에서는 일평생을 그림자처럼 살아온 여성들을 대변한다. 정숙함이 여성의 미덕이었던 그 시절, 순종적이고 그림자처럼 살아야만했던 수많은 V(Virginia)양들. [런던 거리 헤매기]에서는 여성이 갖는 직업의 한계에 대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여성의 직업]에서는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이 여성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즉 오로지 개인의 삶은 등한시한 채, 양육과 살림이 전부이고 순종적인 아내이자 정숙한 어머니로서만 존재하는 '천사'의 역할은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특히 남성이 여성이 되어 사회적 규범으로 통제 당하고 한계를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장편 <올랜도>를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절정은 역시 [자기만의 방]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학문이 여성에게 닿기까지 녹록치 않음을, 또한 여성의 공상과 시적 언어는 어리석게 치부되며 그저 읽고 보고 듣고 기억하는 일차원적 기능까지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이렇게 되기까지 기성세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또한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역사 이래로 줄곧 가난하였기에 시를 쓸 기회도 갖지 못했음을, 그래서 여성이 돈과 자신만의 방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울프는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성적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298.

자연은 자신의 최고 걸작으로 인간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을 때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자연은 고개를 돌리고 자기 어깨 너머로 우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주된 본성과는 전적으로 모순되는 본능과 욕망이 스며들게 놔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줄이 그어지고 얼룩덜룩한 혼합물이 되었고 색깔이 바랬다. (...) 진정한 자아는 이도저도 아니고, 여기도 저기도 아니고, 너무도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서, 우리가 그것의 소망을 마음껏 펼치게 하여 방해받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때만이 실로 우리 자신이 되는 걸까? 상황은 통합성을 요구한다. 

(런던 거리 헤매기)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 보편적인 여성들의 삶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삶에도 공감했고, 인생에 대해서도 관찰자로서 깊은 사유를 했다. 

단편 [벽에 난 자국]을 통해서 작가는 자기가 소유한 물건조차 통제하지 못하며 온갖 문명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피하지 못하는 인생의 우연에까지 생각이 흘러간다. 단편 [큐 식물원]에서는 달팽이와 식물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한 내용인데, 어쩐지 인간의 삶의 굴곡과 다르지 않다. 젊은 부부의 지나간 사랑과 현재에 실재하는 가족,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되는 육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있는 젊은 세대와 아직은 미흡하기에 더 싱그러운 그들의 사랑.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다. 걸음마다 심사숙고하나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나고, 완벽할 것 같은 계획도 어긋나기 일쑤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우리의 평범한 일생이다. 


60 - 61.

달팽이가 흙 부스러기에 올라가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달팽이가 흙 부스러기에 오르자 흙이 부서져 굴러 내렸다. 달팽이는 명확한 목적지를 앞에 둔 것 같았는데, 특이하게 다리를 높이 쳐든 말라빠진 녹색 곤충과 이 점에서 달랐다. 그 벌레는 앞으로 건너가려다 심사숙고하듯이 더듬이를 떨면서 잠시 기다리더니 기이하게도 반대 방향으로 재빨리 멀어져 가 버렸다. 누런 절벽들과 그 사이 구덩이의 깊은 녹색 호수들, 뿌리에서 꼭대기까지 흔들리는 편평한 칼날같은 나무들. 둥근 잿빛 바위들, 사각거리는 얇은 질감의 쭈글쭈글한 방대한 표면. 이 온갖 물체들이 달팽이가 목적지를 향해 한 줄기에서 다른 줄기로 나아가는 길에 가로놓여 있었다.  (큐 식물원)


64.

달팽이는 이제 낙엽 주위를 돌아가거나 그 위로 넘어가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방법을 모두 생각해 보았다. 이파리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촉수 끝에 닿기만 하면 놀랍게도 바스락거리며 떨리는 얇은 섬유 조직이 그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달팽이는 낙엽 밑으로 기어가겠다고 결정했다. (큐 식물원)


41.

아! 맙소사, 삶의 불가사의란! 생각은 얼마나 부정확하고, 인간은 또 얼마나 무지한가! (벽에 난 자국)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부정당하며 살고 있다. 본능적 자아를 억누르고 내면에 있는 다양성을 거부당한 채, 규정된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단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작가는 [충실한 벗에 관하여]에서 생명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에 대한 경멸을 나타냄과 동시에 동물의 야생성을 소멸시키는 인간의 행태를 빗대어 인간 또한 자신의 욕구를 소멸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완벽한 교양을 갖추도록 억압된 교육을 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학문과 이론은 순수한 감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또한 사회적 차별(여성, 노동자)이 낳은 소통의 부재,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노동 계층에 대한 무지, 정치권에 부재한 여성, 전쟁의 무용성을 들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일갈하고 있다.  


386.

사회적 차별이 사라졌다는 것은 무익한 가정이다. 그런 제한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영역에서 세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다. 여름날 한가하게 거리를 빈둥거리는 사람은 성공한 자들의 실크 스카프 사이로 밀치고 나아가는 청소부의 숄을 직접 볼 수 있다. 자동차 유리창에 코를 바짝 댄 요점원을 볼 수 있다. 조지 왕을 알현하려고 입장하기 위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 젊은이들과 위엄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그 사이에 적대감이 없을지 몰라도 소통 역시 없다. 우리는 가둬져 있고, 분리되고, 단절되어 있다.   


387.

겉으로는 방대한 중산층의 평등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회적 대중을 가로지르는 희한한 결과 줄무늬가 있어서 남자와 남자를 떼어 놓고 여자와 여자를 떼어 놓는다. 신비로운 특권이나 불리한 조건은 직함 같은 노골적인 것으로 식별할 수 없는 미묘한 것이지만 인간 교류라는 중대사를 방해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 우리 앞에 깊은 심연이 벌어져 있다. 건너편에는 노동 계층이 있다. 제인 오스틴처럼 완벽한 판단력과 감식력을 지닌 작가는 그 심연을 가로질러 흘끗 쳐다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계층에 스스로를 한정하고 그 속에서 무한히 미묘한 의미를 찾아낸다.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 곳곳에서 문학과 독서, 음악의 유용성에 대해 강조한다. [서재에서의 시간]을 통해 생생하고 아름다운 언어와 문학, 책, 독서가 지속되어야하며, 문학은 죽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리의 악사]를 통해 허세를 걷어내고 음악을 순수하게 영위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선사하는지 일일이 열거한다. 이처럼 작가는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사유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관통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규율과 규범에 종속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자유로워야만하는 존재임을 각성하게 해주는 버지니아 울프. 그 이름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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