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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Feb 10. 2021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여덟 살부터 짐수레꾼으로 일한 할아버지는 읽고 쓰는 일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가족 중 누군가가 책 혹은 신문에 빠져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흙으로 지은 초가집에 살았던 가난한 조부모는 아버지가 학교에 가는 대신 농사 일을 거들기를 바랐고, 아버지는 수업에 빠졌다. 할아버지는 열두 살 아들을 초등 교육 수료증 준비반에 넣는 대신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집어넣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들을 더 이상 먹여 살릴 수는 없었기에.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이른 아침부터 농장에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의식주를 해결했고 약간의 돈을 받았다. 이불도 없이 외양간 짚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이제는 갈 수 없는 부모님 댁을 생각했다. 전쟁의 시대, 아버지는 군대를 통해 세상에 진입했다. 제대 후에는 건실한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매주 돈을 저축했으며 같은 공장 노동자인 어머니와 결혼했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상인을 꿈꿨고 대출을 받아 기반을 이뤘다. 반은 장사꾼으로, 반은 노동자로 살고 있는 그에게는 무엇보다 먹고 사는 게 중요했고, 살아 남는 건 더 중요했다. 삶은 결핍의 연속이었고 교양과 예술은 사치였다. 아버지는 가난해도, 자식이 죽어도, 전쟁이 나도,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삶이다. 굳이 나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년 시절 전쟁을 겪었거나 전쟁 직후에 유년 시절을 보낸 부모님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특권 계층 혹은 기득권층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했고 배우지 못했으며 삶의 질보다는 생존이 더 우선했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그들의 자식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투하며 살아냈기에 이 책은 원제목처럼 '자리La Place'가 더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고 자부하지만 막상 시간이 흘러 다음 세대에 자리를 물려줄 때가 오면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자신의 무지가, 문득 부끄러워진다. 이 정도면 괜찮게 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적어도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람하기에 자신의 부모와는 다르게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한 자식이 고상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고 무시하며 더이상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말하지 않을 때 오는 서글픔, 당신이 번 돈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위해 쓰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모습은, 왠지 익숙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자식과 번듯한 집안에서 자란 엘리트 사위를 맞이하는 자신의 모습은 왜 이리 초라한가. 그럼에도 아버지가 커다란 자부심과 만족을 느끼며 뿌듯해 하는 순간은 그토록 진입하고 싶었던 세상에 자식이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때다.


이는 한 개인의 '아버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물리적인 전쟁이 아닐 뿐 세상은 우리를 늘 치열한 전쟁터 속으로 내몰고, 우리의 부모들은 그 안에서 가족과 삶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개인적인 서사를 데려와 인간의 한 생애를 '기억'과 '자리'로써 사실적으로 건조하게 써내려갔다. 책의 마지막, 작가가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옛 제자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기억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해 얼마나 사실대로 기억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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