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 번씩
한 달에 한 번, 호르몬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 돌아올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벌써?'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그 속에서 나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벽 앞에 매달려 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건넌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난히 바쁘지도 않았는데 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자꾸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나만 이런 건 아닐 거라는 걸 안다.
어쩌다 한 번씩,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공포가 솟구치는 날이 있다.
분명 아무 일도 없는 하루였는데 말이다.
날씨는 맑고, 오랜만에 햇볕도 따뜻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평범하기만 했는데.
“나, 지금… 조금 행복한데?”
그 순간, 불안이 찾아온다.
그림자처럼, 한없이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히.
'이런 평범한 날들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 자꾸 멈춰 선다.
재발과 전이. 그리고 또 다른 암 선고.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일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평생 동안, 어쩌면 늘 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그래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살아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기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아무리 반복해도 가끔은 어떻게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6개월에 한 번, 종양내과 검진.
1년에 한 번, 유방외과 CT, 초음파, 엑스레이.
검사실 앞에 서면 한껏 무던한 표정을 짓지만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쥐게 된다.
의사의 짧은 한숨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잠깐의 침묵이, 나를 천국과 지옥 사이로 데려간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좀 많이 무섭다.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그땐 믿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실제로, 나는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계속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을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 불안은 누가 꺼내줄 수도 누가 잡아줄 수도 없는 것임을 잘 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이 작은 공포의 물결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고 그저 이 평범한 하루를 다시 조심스럽게 살아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