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사과 박스

by 율무차

“너는 서울에 왔으면 삼촌한테 인사를 하러 와야지.”
그 말에 정미의 마음속에서 뭔가 뿌드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서울에 놀러 온 엄마가 곁에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하고 정미는 마음을 붙들어맸다.
어른이니까. 엄마의 오빠니까. 참자, 참어.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른다. 뭐 그렇게 예민하냐고.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사람의 인생을 오래도록 지배한다.

정미가 초등학생 무렵. 그때 부모님은 과일가게를 했다. 그냥 평범한 가게였지만, 엄마 아빠가 워낙 친절해서인지 장사는 늘 잘됐다. 장사라는 게 그렇다. 자리를 지키는 만큼 돈이 되는 법이라, 정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님은 과일을 떼러 갈 때면 꼭 정미를 데리고 갔다. 사실 어린애 하나 데려간다고 일손에 보탬 되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귀찮음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를 곁에 두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그 마음을 떠올리자 정미는 잠시 따뜻해졌다.

어느 날은 엄마가 가게를 지키고, 아빠랑 둘이서 시골에 있는 외삼촌 과수원에 사과를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아빠의 트럭보다 엄마의 승용차가 더 좋다고 했지만, 가끔 타는 트럭은 앞이 훤히 트여 있어 속이 시원했다.


시골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늘 즐거웠다. 아빠가 기분이 좋아져서 어릴 적 이야기나 고향 얘기를 들려주곤 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휴게소를 들리는 건 아빠랑 정미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아빠와 정미는 거기서 꼭 주전부리를 사 먹었다. 평소에 엄마가 달고 짜기만 한 간식들을 왜 사먹냐고 해서 엄마랑은 좀 눈치 보게 되는 핫바나 달달한 아이스크림. 평소에 서먹한 사이지만, 이런 재미로 아빠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 잘 안 풀리는 일, 요즘 재미있는 것들, 엄마랑 둘이서 있었던 일, 얼마 전에 함께 갔던 패밀리레스토랑 또 가고 싶다 같은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트럭은 과수원으로 향했다.


아빠랑 엄마는 시골에 가기 전엔 시골에선 좀 빨리빨리 구비하기 어려운 생필품이나 간식들을 꼭 바리바리 챙겨들고 갔다. 지금이야 아침에 주문하면 밤에 오고, 늦어봐야 이틀이니 그런 아쉬움이 없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아서 나름 큰 도시에 사는 엄마 아빠가 외삼촌 댁을 좀 챙겨줬던 것이다. 엄마가 챙겨준 반찬들과, 이것저것 챙겨온 생필품들을 내려놓고 아빠는 오랜만에 온 외삼촌 댁에 문제는 없는지 이것저것 점검해봤다. 솜씨가 뛰어나진 않아도 수도 교체라든지, 집을 손봐주는 일은 나이 많은 외삼촌이 하는 것보다 아빠가 해주는 게 편하니까. 그래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외삼촌은 어색했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엄마도 없으니 사과 가지고 얼른 집에 갔으면 하는 정미는 아빠를 콕 찔렀다. 아빠는 빨간색 고무가 발려 있는 면장갑을 끼고 외삼촌 집 처마에 있는 전깃줄을 정리하며 조금만 기다리라며 정미를 달랬다.


과수원에는 창고가 있다. 사과를 따서 저장해놓는 창고인데, 들어가면 서늘한 공기에 사과의 달큰한 냄새와 사과가 익어가는(썩어가는) 특유의 녹진한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운다. 아빠는 외삼촌 집을 요리조리 손봐주고 땀에 젖어 있었다. 늘 들고 다니는 빨간색 물통에서 시원한 물을 들이키곤 차에 있을래? 구경할래? 하며 정미에게 물어본 뒤, 아빠 옆에 있겠다고 하자 허허 웃으며 일을 시작했다. 차에 있을 것이냐, 구경할 것이냐 하는 질문만 봐도 정미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깍두기인 게 보인다.


그래서 외삼촌이 왜 불편하냐고? 궁금하다면, 고작 12살 정도 되는 정미의 눈에 외삼촌은 아빠에게 너무나 고자세였다. 사실 우리 가게 사과는 그냥 우리 시에 있는 커다란 도매시장에서 과일을 사도 된다. 근데 외삼촌이 과수원을 하니까 외삼촌 과수원에서 사주는 것이다. 엄마가 시켜서 그런 거냐고? 하겠지만 엄마는 실리주의를 따지는 사람이라 먼 길 운전도 해야 하고, 좋지도 않은 거 그냥 도매시장에 가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아빠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산지직송이지 않냐며 대부분은 삼촌의 사과를 가져다 팔았다. 물론 외삼촌이 도매시장의 가격보다는 저렴하게 주셨겠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과일가게 딸인 정미는 어떤 사과가 좋은 사과인지 아닌 사과인지 정도는 구별 가능했다. 그야말로 그저 그런 사과였다. 산지 직송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래서,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는. 정미는 외삼촌의 사정까지는 속속들이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눈에도 ‘우리가 안 사면 이거 누가 다 사?’ 하는 마음이 들 정도의 그냥 그저 그런 사과였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서로 돕고 사는 것. 엄마 아빠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할머니가 과일을 많이 사가서 조금 무겁다 싶으면 엄마는 가게에서 할머니가 괜찮다 손사레를 칠 때까지 들어다 주었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끌고 온 구루마가 있다면, (요즘은 시장 보는 카트라고 한다) 과일을 들고 갈 수 있게 장 본 것들로 가득한 구루마를 엄마는 손수 정리해서 차곡차곡 테트리스 해주고 뿌듯하게 웃기도 했다. 아빠는 스쿠터를 몰고 요리조리 다니며 과일 무겁다고 배달을 해주고, 얼마치 사면 말도 안 되는 덤을 줘서 이게 남나? 싶을 때도 있었다. 정미가 보고 자란 어른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외삼촌은 그게 아니었다.


사과를 담아가는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는 사과를 가득 채우면 대략 20kg다. 한 번에 사가는 사과는 대략 사오십 박스, 외삼촌은 같이 하면 빠를 일을 도와주지 않고 소를 돌보러 축사로 향했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아빠는 삼십 분이 넘게 혼자서 사과가 가득 찬 박스를 옮겼다. 사과 두 박스 정도의 몸무게인 초등학생 정미가 아빠를 도와줄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빠 말동무나 되어주는 게 다였다. 앞서 시골집을 봐주느라 이미 땀에 젖었는데, 그 무거운 사과 박스를 몇십 박스나 옮기니 비에 젖은 듯 땀을 흘리는 아빠였다. 물론 삼촌도 어느 때는 조금 도와주기도 하더라. 아빠가 괜찮다 손사레 치면 금세 아니긴 했지만.


삼촌이 고맙다는 표현을 안 한 건 아니겠지만, 이미 20년도 지난 일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데에는 삼촌의 태도가 답을 해준다. 정미 눈엔 그게 짜증 났다. 우리아빠가 공짜로 가져가는 건가? 공짜로 줄 리 없다. 외상으로 가져가 팔고 나서 대금을 지불하는가? 그럴 리가. 바지 주머니에 현금 뭉치 가득 넣어 와 그 자리에서 정산해주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때 정미는 괜히 화가 났다. 어린 마음엔 ‘왜 우리아빠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지?’ 하는 부끄러움 같은 게 밀려왔다. 부끄럽다고 느끼면 안되는것인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이 아니라 삼촌이 미운거랑, 아빠가 답답한 감정이 부끄럽다는 감정으로 느껴진것이다.


아빠는 집에 간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형님 잘 사갑니다. 이번에도 또 잘 팔아볼게요. 끼니 잘 챙겨드시고 계시소. 필요한 거 있으면 정미 엄마한테 전화하고요.”
외삼촌은 “어어, 그래그래” 하며 대답하는데 아빠는 뭣이 그렇게 살가워서 쫑알쫑알 말이 많다.

정미는 외삼촌 들릴랑 말랑 “계세요” 하고 꾸벅 인사하곤 차에 쏙 올라탔다. 아빠도 올라타서 수건으로 땀을 닦고 물을 들이켰다.
“미야, 가는 길에 뭐 먹을꼬?”
그때는 지금처럼 섬세한 마음이 작동하지 못해서, 바보 같은 아빠한테 바보같이 짜증으로 답했다.
“집에 갈래요.”

그렇게까진 안해도 될텐데 하는 답답함과 아빠 잘못도 아닌데 하는 미안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아빠의 기분이 조금 상했을까 슬쩍 눈치를 보며 “아빠 힘드니까 아빠 먹고싶은거 먹어요.”하고 말을 덧붙혔다.


초등학생 정미가 어른이 되고, 삼십 대 중반을 지나오는 과정에도 아직도 마음 한켠에 그런 장면들이 그려진다.

그래서 서울에 왔는데 인사하러 오지 않느냐는 말에 욱한 것이다. 삼촌과 헤어지고 광화문 광장을 엄마 손 잡고 걸어 내려오는데 엄마에게 이런 기억들이 있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 기억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었냐며, 그렇다면 너무 마음이 안 좋았겠다고 말해주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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