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만 보면

by 율무차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공부보다는 어떻게 놀아야 야무지게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계절에, 정미는 파란색 모기장 안에 누워 있었다. 그 해 여름 정미는 미음과 투게더만 먹어야 했다. 잘 때 입으로 숨 쉬고 간간히 코를 고는 게 그냥 비염 때문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끌고 간 대학병원에서는 아데노이드 비대증이라고 했다. 입안에 아데노이드라고 하는 편도 비슷한 것이 크다나 뭐라나, 이걸 레이저로 지지는 수술을 했다. 밥을 못 먹으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아빠가 쳐준 모기장 안에 만화책이나 보며 뒹굴거렸다. 물 마실 때도 목이 따갑고 아파서 물도 천천히 머금듯이 마셔야 했다.


요즘 여름에 비하면 그때 여름은 더운 것도 아니다 싶은 날씨였지만, 무섭기도 하고, 오랜만에 엄마 아빠 관심이 본인한테 쏠린 것 같아 괜히 덥다는 핑계로 징징거렸다. 차로 20분 남짓 거리의 대학병원에 데려다주며 엄마 아빠는 별일 아니라며 달래주었다. 부모님은 정미의 구성 요소 중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 징징거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수술한다고 나름 봐준 듯하다. 큰 수술이 아니라 했는데 전신마취를 해야 한대서 그 전날 저녁부터 금식이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처음인데, 전신마취라니 별 상상이 다 들고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미는 한 달 가까이 밥을 못 먹는다는 게 제일 무서웠다. 친구들이랑 시덥잖은 이야기하고, 맛있는 거 먹는 게 삶의 낙인 중학생한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금식 시간이 몇 시간 안 남았을 때, 엄마가 당분간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라며 병원 아래에서 이것저것 사다 주었다. 엄마가 짠한 듯 웃어주는 표정에 정미는 으하하 하고 웃었다. 얇은 빨대를 꽂은 노란색 단지우유가 차갑고 달큰했다.


금식 시간 직전까지 배불리 먹고 낯선 병원 침대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니 수술하러 가야 한다며 이것저것 준비했다. 이렇게 큰 병원에 오는 건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나 와봤지, 수술하러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던 정미는 순간 두려움이 커졌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옮겨지는 정미를 보며 엄마는 잘하고 오라며 또 짠한 듯 웃었다. 그 짠한 웃음에 두려움이 좀 줄었다고 해도 될까.


시키는 대로 수술대로 옮겨지고, 마취가 안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떨고 있었다. 하얀거탑에서 본 것 같은 선생님이 “숨 크게 쉬세요” 라길래 따라했다.


“하나아, 두울.”


입으로 따라했는데 눈을 뜨니 병실이었다. 엄마 아빠가 눈썹은 내려가고, 입은 웃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했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몸속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찬 느낌은 처음이었다. 보진 못했지만 편도선 수술을 했다고 하니 목 안이 빨간색으로 따갑게 느껴졌다. 괜히 큰 수술한 양, ― 어린 마음이라 ― 기억도 안 나면서 괜히 거들먹거렸다. 엄마 아빠랑 몇 마디를 나누고 다시 잠들었다. 잠이 들었다기보단 아직 마취가스에 의해 기절했다고 해야 하나. 일어나니 또 두어 시간 지나 있길래 정미는 엄마 아빠의 식사를 걱정했다.

“나 혼자 있어도 되니까 밥 먹고 온나.”

“니 밥도 못 먹는데 우리 밥 먹는다 하면 먹고 싶을까 봐, 니 잘 때 옆에서 우리끼리 먹었다.”

엄마 아빠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챙겨야 해서 귀찮은, 아빠는 무진장 좋아하는 집밥 도시락을 먹은 듯하다. 옆을 둘러보니 집에서 가져온 빨간색 동그라미 3단 찬합 때문이었다. 나들이 가면 그 찬합에 꼭 들어가는 엄마표 잡채, 오늘도 있었을까. 아빠는 설거지라도 도우면 다행, 엄마 귀찮게 하네 생각하며 정미는 티안나게 아빠를 흘겼다.

“간호사쌤이 마취가스를 몸에서 빼야 된단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정미는 물었다.

“심호흡 많이 하고 아파도 좀 움직이라네.” 엄마가 말했다.

정미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후후 하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약간 오바했더니 머리가 띵했다.

근데 머리 아픈 건 잠깐, 진짜 문제는 벌써 지루하다는 거였다. 입원한 지 24시간도 안 됐을 때였다. 유튜브는 무슨, 전자사전에 소설이나 다운받아 읽는 게 최고의 도파민인 시절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 사촌 언니가 병문안을 와주었다. 정미가 좋아하는, 얼굴이 깐 달걀 같은 사촌 언니다. 수술한 편도가 부으면 너무 아파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었는데, 언니가 그 모습에 한참을 웃었다. 아마 퉁퉁 부은 얼굴에 수건까지 동여매고 있으니 가관이었겠지. 그래도 중학생인 정미가 생각하기에도 별것 아닌 수술인데 이게 뭐라고 와준 언니에게 너무 고마웠다.

“다른 어린 애들처럼 팔 다리 하나 부러졌으면 언니야가 떡볶이나 똘래똘래 사 들고 와서 먹다가 갈 텐데,

니가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우야노.”

다정한 목소리로 놀림 반, 위로 반 했다. 그래도 왠지 아픈데 누가 날 보러 왔다는 것에 괜히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정미였다. 한참을 수다 떨다 뭘 먹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언니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저녁에나 올 테고, 사실 아빠는 어색해서 안 와도 되는데, 엄마는 보고 싶기도 하고… 엄마가 오면 간이침대에서 자는 거 불편할 텐데. 집이 코앞인데 그냥 혼자 잔다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정미였다.


투게더를 먹어야 빨리 낫는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차가워서 통증도 덜하고, 그나마 넘길 수 있는 음식이 투게더였던 것이다. 정미가 한 달 내내 투게더만 먹었다는 것을 친구는 서른 언저리까지 놀렸다. 투게더만 생각하면 정미가 떠오른다고 했다. 근데 놀릴 때마다 사실 웃기기도 하고, 별거 아닌데 그렇게 기억해 주는 것 같아서 내심 좋았다. 옆에있으면 정미를 숨넘어가게 웃겨주는데, 병원에 놀러 왔으면 재밌었을 걸.


일주일도 안 되는 입원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병문안을 왔다. 정미가 왠지 좀 신경 쓰는 지현이었다. 갑자기 그날 아침에 가도 되냐고 묻길래 깜짝 놀랐다. 광대가 실룩 올라가는 정미였지만, “오오, 오든지. 오면 고맙지 뭐.” 이런 식으로 투박하게 대답했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머리도 빗었다. 환자복이지만 매무새도 다듬어보고, 언니가 온다고 했을 때랑은 다른 정미 본인이 좀 웃겼다. 학교에서도 지현 앞에서는 보통의 행동도 바보처럼 굴 때가 있었다. 지금 보니 그냥 좋아하는 거였네. 어렸던 정미는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인정하기 싫어서 허세 부렸나 보다.


지현은 뚝딱거리는 정미를, 정미는 이 방학에 나를 보러 와준 고마운 지현을, 서로 신기하게 쳐다봤다.

왜인지 무슨 필터 씌운 것 같은 여름 풍경이 눈에 아른거리는건 기억의 미화일까.

우리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 안 나서 더 설렜던 것 같기도.


정미는 생각했다.

‘아데노이드인가 뭔가. 지져버리길 잘했는데.’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의 주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