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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Apr 17. 2024

어느 신앙인의 고백


  대외적으로 종교와 현실 정치에 관한 글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신앙에 관해 글을 쓰는데, 이것은 선교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며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자기 성찰의 화두를 던져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평가는 독자의 몫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교회의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백지상태에 있던 머리와 가슴에 주일학교 선생님이 들려주신 말씀과 성경이 그대로 각인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 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성장하면서 이러한 신앙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어느 때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를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위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죄는 도덕적 또는 율법적 죄보다는 신앙적인 죄가 더 근본적인 죄인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또는 율법적인 죄도 심판한다고 하였습니다. 십계명에서도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계명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다섯 번째부터는 인간관계에서 금하는 계명인 것입니다.


  매일 굳게 다짐해도 나눔과 섬김, 희생과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비워도 이기심과 미움을 없애기가 힘듭니다. 더욱이 성경에서 권하는 율법을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율법을 만족시키는 것이 구원의 필요조건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큰 죄를 지어도 오늘 돌이켜 회개하고 바르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난 후에도 똑같은 죄를 다시 짓습니다. 이렇게 죄짓고 회개하고 다시 죄짓고 회개하는 반복적인 고리를 끊기가 어렵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예정설’ 때문인가요?


  이미 구원받았다는 안도감과 아직도 죄와 더불어 산다는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죄짓고 회개하고, 다시 죄짓고 회개하는 이 반복의 고리를 끊어주시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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