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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Apr 16. 2024

'예정설'을 어떻게 믿을까?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예정설’에 대한 인정 여부일 것입니다. 저 역시 신앙적 갈등은 ‘예정설’로부터 비롯됩니다. 예정설은 존 칼빈의 핵심적 사상인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구원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선행을 쌓느냐 못 쌓느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노력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어느 신학자의 주장이라면 크게 갈등할 필요가 없지만, 성경에도 칼빈의 예정설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신은 미리 정해진 자들을 부르고, 부른 자들을 의료 삼으며 의료 삼은 자들에게 영광을 내린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의 필독서가 되다시피 한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도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속한 인종, 피부색, 머리,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특징들을 숙고하여 선택하셨고…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해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출생과 죽음의 시기도 이미 결정해 놓으셨다.”라고 쓰여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죄까지도 모두 고려하여 계획을 세우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정설을 믿는다면 지구상에서의 짧은 삶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단 말인가? 인간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회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 전제를 인정하면 해결됩니다. 먼저, 어느 신실한 믿음을 가진 분께 예정설을 질문하니, “그것을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마세요. 믿으면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종교는 ‘믿는 것’이지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하도록 지어졌고 이 땅에서의 삶은 영생을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하고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100년은 영원한 시간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예정설을 믿을 수 있는 것이지요.


  현재 기독교의 최대 교파인 가톨릭은 ‘예정설은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77쪽 참조), 감리교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개신교 종파는 예정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믿고 예정설을 인정하고 이 땅의 삶이 한 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이 땅의 삶도 중요합니다. 한 영혼의 자유와 평화도 존재론적으로는 무엇과 비교해서도 우선합니다. 오늘도 영원 속의 너무나도 소중한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는 무한한 땅으로 인식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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