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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May 28. 2024

내 안에 '참 나'가. 없다.


  ‘뼈아픈 후회’는 황지우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 그중 한 구절에 아주 공감합니다. 여기에 옮겨 보면,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부정 /…”입니다. 도덕적 경쟁심에서 출발한 일이 헌신도 희생도 아니며 결국은 자기부정이었다는 점에 관심이 갑니다.


  학생 시절에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 뭔가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푸른 옷을 입고 독방에 앉아 눈물인지 땀인지를 계속 닦아내며 마치 나라를 구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교수가 되어서는 6월 항쟁 시, 정부와 학생들이 대치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이 얻어낸 과실(果實)을 자연스럽게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잖게 양비론 또는 양시론적 논평을 했지요. 이렇게 영혼 없는 멘트를 날려대면서 역시 가슴은 허전했지요.


  공직을 맡아서는 부모에게는 제대로 된 안부를 여쭙지도 못하면서, 경로당 어르신들께는 연신 살가운 인사를 해댔지요. 딸들과 나들이 한번 못하면서도 어린이날 행사에서는 천사(?) 비슷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마다 이러한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가졌지만, ‘나의 헌신’ 또는 ‘나의 희생’이라고 합리화하면서 큰 갈등에서는 벗어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기억할 게 많아서인지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어서인지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무척 짧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친구들과 뛰어놀아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지 조바심을 냈습니다. 어서 커서 나도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지요. 하지만 막상 그렇게 바라던 어른이 되고 나니까 ‘헌신’과 ‘희생’을 앞세우며 사실상은 자기부정을 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를 다시 읽어보지만, 내 안에는 ‘참 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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