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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May 30. 2024

민원 업무의 어려움


  평소에 지인들과 얘기할 때 과거 얘기는 잘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대부분 저보다 연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과거 얘기 자체를 ‘꼰대’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과거 공직 시 느꼈던 민원 업무의 어려움을 몇 가지 얘기하고 싶네요.


  당시 각종 행사에 참석하거나 우연히 시민들을 만날 때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이 많아 제가 무척 ‘인기 많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착각임을 깨달았고, 반갑게 해 주는 진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저에게 건의할 내용이 있거나 하소연할 말이 있어서 반겼던 것입니다. ‘우리 동네 앞 도로를 넓혀 주세요’, ‘장사 잘되게 해 주세요’, ‘버스 노선 연장해 주세요’, ‘단체 지원을 더 많이 해 주세요’, ‘도시가스 들어오게 해 주세요’, ‘학교폭력 없애 주세요’, ‘경로당 리모델링 해 주세요’, ‘복지관·도서관·체육관 지어주세요.‘ 등 종류와 내용이 다양합니다.


  건의 내용 중에는 각 개인의 가치관과 이익에 따라 상반된 주장도 있습니다. ’ 주차 단속을 강력히 해 주세요 ‘, ’ 장사가 안 되니 주차 단속을 완화해 주세요 ‘, ’ 개인택시 면허를 내주세요, 개인택시를 절대 늘려서는 안 돼요’, ‘3대 하천에 운동 시설을 늘려 주세요’, ‘운동 시설이 많으면 쾌적하지 않아요’ 또는 개중에는 ‘우리 아들 취직 시켜주세요’, ‘우리 남편 승진 시켜주세요’, ‘누구는 나쁜 사람이고 누구는 좋은 사람이에요’와 같은 곤욕스러운 청탁도 간혹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공직자들은 어려운 민원에 시달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민원 중에는 우리 소관이 아닌 것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사항은 중앙 정부의 업무, 교육청의 업무, 경찰청의 업무, 하물며 민간 회사의 일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입장에서는 어렵사리 부탁해 온 분들에게 이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박절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포괄적으로 ‘정부’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지 정부 내의 업무 분장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 업무는 아니지만 저희가 그 내용을 파악해서 해결하거나 결과를 알려드릴게요”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히 제기했던 민원을 챙겨서 결과를 통보해 주어야 하지요.


  어떤 민원이라도 인내하면서 그 과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법이나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고민 끝에 “법에 저촉된다”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매우 섭섭해하거나 “법대로 하려면 뭣 하러 여기 와서 부탁을 합니까?”라는 퉁명스러운 항의가 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의를 가지고 법 개정을 건의하는 데까지 언급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 얘기를 쓰는 것은 과거 민원을 회상하면서 지금 후배 공무원들의 어려움을 위로하고 싶어서입니다.


  공직자는 연애하는 심정으로 시민과 만나야 합니다. 연애할 때는 상대가 좀 무리한 얘기를 해도 바로 거부하지 않듯이 시민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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