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by 염홍철



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는 일본의 야마구치 슈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철학자 못지않게 본격적인 철학 서적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라는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전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교양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라는 명제를 던져 준 것이지요. 그는 50명의 철학자를 통해서 50가지 철학과 사상을 요약하여 제공하였습니다.

지난주에 <중도일보 칼럼>을 통해 ‘전쟁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라는 글을 썼는데, 주말 내내 그 주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마구치 슈의 ‘50가지 생각 도구’ 중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악의 평범성>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정신적 위기를 분석하고 고찰하는 데에 집중하였지요.

우리가 악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분석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 한나 아렌트는 그 경험을 책으로 기록했는데, 그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였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니? 평범하다는 것은 너무 많아서 시시하다는 의미도 되는데, 악의 위치가 평범하다고 한 것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민족에 대한 증오나 유럽 대륙에 대한 공격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의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경위를 방청하고 나서, 그는 악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다면 누구나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지요. 이에 대해 아렌트는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에 악의 본질이 있다.”라고 본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도 극도의 악한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합니다.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 계획을 세울 때 주도적 역할을 한 아이히만에 대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평가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라는 결론처럼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 무조건 충성하다가 악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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