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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l 17. 2024

구상 선생님을 그리며


  20년 전에 작고한 시인 구상 선생님은 생전에 시인으로 뿐만 아니라 구도자로도 존경받았습니다. 동경에 있는 ‘일본대학’ 종교학과를 나온 구상 시인은 기독교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미의식을 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사상과 선불교적 명상 및 노장사상까지 섭렵하여 그의 정신세계는 광범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적 경향이 짙다’고 평가받았지요.


  그의 대표적 시는 연작시인 <초토의 시>인데, 전쟁의 비극과 참혹성을 다뤘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황폐성을 부각하면서도 화해와 사랑을 추구했지요. 나의 한과 미움이 적군에 향하고 있지만 적군도 한과 미움이 있을 수 있으며 그들도 같은 민족이자 연민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휴머니즘과 기독교 정신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 열흘간 들려주는 시인들의 꽃 이야기‘라는 시집 <시인의 꽃>을 받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시집에서 구상 선생님의 <풀꽃과 더불어>라는 시를 발견했지요. “··· / 저 미미한 풀 한 포기가 / 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여 /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여 / 한 떨기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 생각하면 할수록 / 신기하기 그지없다 / ···” 이 시는 영원과 무한을 다뤘습니다. 이 시에 대한 “’한 표현‘이 있다면 ‘한 부분을’ 인정하고 ‘한 사랑’을 전한다”는 권성훈 시인의 해석은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방식을 환원하는 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상 선생님은 저보다 30년 가까이 연상인데 한동안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1년 동안 서울에서 ’ 남쪽 바다‘가 있는 학교에 강의를 같이 다녔습니다. 그때 저는 30대 초반이었고 구상 선생님은 환갑 전후였습니다. 항상 내려갈 때는 버스에 동승하였기 때문에 수 시간씩 그분의 인생 경험을 들었습니다. 가장 많이 해주신 얘기가 그분의 젊은 시절 절친이었던 이중섭 화가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우리 세대의 우정과는 전혀 다른 그분들의 ‘깊음’을 느꼈습니다. 간간이 젊은 세대들의 우정의 ‘낮음’에 대한 지적도 해주셨지요. ‘우정과 의리’라는 화두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지요. 그러면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무교동 냉면집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후속 강의가 이어졌지요.


  미미한 풀 한 포기도 한 떨기 꽃을 피워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데, 과연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되물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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