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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두 표정

by 염홍철



언젠가 합천에 있는 황매산에서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홍빛 철쭉꽃 군락이 장관을 이루었으나 막상 1000미터 이상 되는 산의 벌거벗은 바위를 오르다 보니 이것은 산행이 아니라 산악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군데군데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이 저의 땀을 식혀주었지요.


내려오는 길에는 산나물 파는 여인들이 길게 늘어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손님을 부르고 있었는데, 시골 장터 풍경이어서 정감을 느꼈습니다. 그 가운데 조그만 천막을 치고 막걸리와 커피를 파는 젊은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바로 옆 침상에는 한 살 도 안 되어 보이는 갓난아기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지요. 저 젊은 여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을까? 하루 벌이는 얼마일까? 남편은 무슨 일을 할까? 아기가 더위를 견뎌낼 수 있을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캔맥주와 ‘카수’들의 열창에 웃음바다가 되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집에 와 잠자리에 누워서는 낮에 본 황매산 자락에서 막걸리를 팔던 젊은 여인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라 편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잠자리에서의 그 느낌을 머리에 새겨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음과 같은 글을 흰 종이에 써 보았습니다.


젊은 여자는

바람 불면 날아가는 천 막 치고

막걸리와 커피와 라면을 판다


옆 침상에 갓난아기 햇볕 그대로 받으며

곤하게 잔다

여자의 그은 얼굴엔 아무런 표정 없다


그 여자는 손님 한번, 아기 한번 돌아보며

빠르게 손 움직인다, 제 生을 판다


“초장 좀 더 주소” 오이를 든 손님 주문하면

초장 건네면서도 그 여자의 눈은 뒤척이는

아기에 가 닿아있다


“잘 마셨어요”

천 원짜리 지폐 던져주고 떠나는 손님 뒤로

빈 바람만 휑, 따라간다


여자는 돈도 챙기지 않고 아기에게 다가간다

땀을 닦아 주고 기저귀 갈며

옅은 미소, 얼굴에 스쳐간다


한 손으로 콧잔등 땀 훔쳐대며

한 손으론 행주질 놀림 빨라지는데


햇볕 받으며 딱딱한 침상에 잠든

아기는, 감기 한번 만나지 않고

튼실한 장년 되어 금옷 입고 돌아온다


백발이 된 여자는 장한 아들 생일상 받으며

콧잔등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그러나 환한 웃음 얼굴에 그득하다


(이 시는 염홍철 시집 <한 걸음 또 한 걸음> 28~2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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