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에 ‘워라밸’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워라밸은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의 첫 자를 따온 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지요. 1970년대 후반에 영국의 여성 노동자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2000년대부터는 세계적으로 확산된 개념입니다. 사실 처음 시작은 기업에 국한된 용어로써 ‘주어진 시간에는 충실하게 일하고, 때가 되면 후련하게 퇴근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가 만족한다는 개념인데, 지금에 와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일터와 일상에 적용되는 개념이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은 직장 선택에 있어서 ‘워라밸이 가능한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직장이나 개인에 따라서 워라밸이 실현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두 개념이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시점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삶(가정)은 육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신분석학자이며 육아와 관련하여 많은 업적을 남긴 존 볼비의 주장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존 볼비는 어린아이였을 때 맺은 관계를 통해 성인이 된 뒤에도 자아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의하면
“만약 부모 또는 양육자가 자상하고, 일관되며, 주의 깊고, 안정적이고, 다정하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사랑하는 법을 알고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갖게 된다. 설사 자신의 욕구가 무시당한다 해도 침착하게 호소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은 친밀한 애착을 통해 삶의 힘과 기쁨을 얻고, 이러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받지 못하거나, 제대로 위로받지 못해 불안에 시달리거나, 관심과 격려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면 우울해지는 것이고, 이러한 정서적 박탈감은 자녀에게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와 직접적인 충돌을 빚게 됩니다. 직장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안아주기, 잠자리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카펫 위에서 끈기 있게 놀아주기’ 등의 역할은 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알랭 드 보통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감상적이면서도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생활이 상충하는 것은 무능이나 의욕 부족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족을 제대로 돌보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직장에서 일의 성과를 내고 경쟁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가 중요하지만 서로 배척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워라밸의 실천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상 존 볼비와 알랭 드 보통의 인용문은 알랭 드 보통&인생학교 <현대 사회 생존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