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는 매년 ‘바보 음악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음악회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의 뜻을 기리고자 2010년부터 열리기 시작하여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스로 ‘바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바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 ‘바보’라는 뜻은 단순한 무지하거나 부족함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지난 주말 대전예술의 전당에서는 ‘바보 음악회’가 열렸는데, 음악회의 취지가 잘 살려진 사랑과 감동의 무대였습니다. 당연히 재능 기부를 해온 바보 오케스트라가 출연하여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를 시작으로 그리그의 ‘페르퀸트 모음곡’을 끝으로 아홉 곡의 감미로운 음악이 연주되었고, 지역을 대표하는 신세대 소프라노 전해영과 첼리스트 이경민이 동참하였습니다. 우리 귀에 익은 아름다운 곡들이 연주되면서 3월의 주말 저녁을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연주에는 음악 못지않게 ‘두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안녕을 안겨주었습니다. 악기와 노래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악기이고 노래였습니다. 한 사람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이해인 수녀의 시 낭송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지휘자 차인홍 교수였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3월의 바람 속에’를 비롯한 ‘행복 수첩’, 그리고 ‘오늘을 위한 기도’라는 시를 낭송해 주었고 특히 ‘오늘을 위한 기도’는 관객과 함께 교송을 하였지요. 뿐만 아니라 이해인 수녀는 김수환 추기경의 인품에 대해 에피소드 위주로 쉽게 설명해 주셔서 그분의 인간애를 실감하게 해 주셨습니다. 80세인 이혜인 소녀는 대장암을 극복하여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 되신 분이지요. 여고생의 목소리와 해맑은 미소는 ‘지상의 천사’였습니다.
지휘자 차인홍 교수는 물론 섬세하고 열정적인 지휘로 음악의 격을 높여주었음은 물론이지만, 그분의 인생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지요. 차인홍 교수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여 살았는데 국내에서는 초등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독학으로 미국 대학에 유학하여 8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학 바이올린 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임용이 된 인간 승리의 주인공입니다. 그날 차인홍 교수의 음성은 들을 수 없었지만, 휠체어에 앉아 지휘석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그의 모습으로 관객들은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평생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 3,000여 편의 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과 위로를 준 이해인 수녀, 그리고 가장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된 차인홍 교수의 삶을 음미하며 세 분의 공통점을 하나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종교를 떠나 ‘모든 것이 하나(느)님의 은혜로다 ’입니다. 종교적으로 거북하시다면 ‘모든 것이 하늘(절대자)의 뜻’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