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입니다. 엊그제같이 느껴지는데 세월이 많이 지났네요. 그 당시 그분은 대전의 장애인 야간 학교 이전을 위한 시낭송회를 가졌는데, 마침 장소가 대전시청 대강당이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해인 수녀님과 차담을 나눴지요. 이것이 그분과의 첫 번째 만남입니다. 그 당시 50대 후반이었는데 소녀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었고 수줍음과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는 매우 편하게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대전이 ‘한밭’이라는 것을 알고 시 낭송을 시작하면서 먼저 ‘밭’과 관련된 시를 선택하셨습니다. 첫 시가 ‘밭도 아름답다’였습니다. 물론 그 시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그 시는 “바다도 아름답지만 밭도 아름답다”로 시작하여 “나는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열려있는/ 엄마밭이 되고 싶다/ 흙의 시가 되고 싶다.”라고 끝나는 시였지요. 대전에 왔기 때문에 한밭을 의식하여 밭으로 시작되는 시를 선택한 그 배려와 섬세함은 감동 자체였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는 이해인 수녀님이 어제 <아침단상> 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바보 음악회’ 특별 출연을 위해 대전을 방문하였습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짧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긴 얘기를 할 수 없어 대전 방문 환영의 인사와 함께 “제 친구들이 수녀님의 시를 무척 좋아합니다”라고 말을 건네었지요. 또 연결고리를 통해 친밀함을 느끼기 위해 저와 수녀님, 두 사람 모두하고 교분이 있는 서울의 박모 무용가의 안부도 같이 전했습니다. 역시 반가워하더군요. 헤어진 그 후 다시 무대에 선 수녀님을 만났지요.
수녀님은 그날 네 편의 시를 낭송했는데 첫 번째 시가 ‘3월의 바람 속에’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가 남겨주셨다는 ‘행복 수첩’이라는 시에 많이 공감하였습니다. 4편 긍정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시는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마술사인 애인 덕에/ 난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로 끝나지요. 이와 같이 이해인 수녀는 3,000여 편의 시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지요.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유서와 영정 사진까지 준비한 그분은 강인한 의지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그때 죽음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연 전 수녀님을 만났을 때 저에게 <우리 동네>라는 그림수필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따뜻한 사람 관계를 잘 묘사했습니다. 그중에 한 장면을 소개하며 이해인 수녀님과의 만남을 뒤로하네요. 이 글들도 ‘국민 시인’ 임을 일깨우는 대목이네요.
“우리 동네 구두점 아저씨는 마술사의 손을 지녔습니다. 수녀님들이 헌 구두를 들고 가면 고쳐서 완전히 새것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구두점 아저씨는 성당과 수녀원의 큰 행사에도 참석합니다. 고급 양화점이나 백화점에 밀려 장사가 잘 안 되는 구두점 아저씨네 가족을 위해 나는 늘 기도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