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극복할 수 있을까?

by 염홍철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감정적 소통은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고, 사랑이나 우정이 미움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대충 아래와 같은 논리로 조언을 해주지요.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성찰은 바로 ‘시간에 대한 성찰’입니다. 시간 속에 있는 것 중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육체가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기 때문에 시간 속에 있는 존재들은 가변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우정이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시간을 거스르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면서도 “나는 네 마음속에 살아 있을 거야”라든지 “너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라고 말하는 등 비록 우리가 헤어지지만 ‘나의 마음속에 네가’, ‘너의 마음속에 내가’ 살아 있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또한 목숨을 걸고 사랑을 지키려고 하지요. 이런 것들이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도전이지요.


이러한 ‘시간 극복’은 니체의 ‘영원회귀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직선적이지 않고 순환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지요. 시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철학적으로 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속도와 중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지요.


그러나 저는 사랑과 우정이 존속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신화 또는 종교 차원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행한 기적을 어느 집단은 믿고, 어느 집단은 믿지 않지요. 따라서 신화나 종교는 특정한 집단 사람들의 공유된 신념입니다.


사랑과 우정도 특정한 사람 특히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시간의 극복’을 믿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우정은 영원할 것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시적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예수의 기적을 믿지 않는 크리스천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니듯이 ‘시간의 극복’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나눌 자격이 없다고 설명해 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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