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경험했던 공포와 고통 같은 순간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으로 정신적 외상’이라고도 합니다. 당연히 부정적 의미이지요. 물론 일반적으로 이것을 적용할 수 있으나,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어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예컨대, 병이 있어야 오래 살고, 건강하면 오히려 수명이 짧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어 결핍이나 고통은 희망을 품고 있는 가능성이라고도 얘기하지요. 최준영의 <결핍을 즐겨라.>라는 저서에 의하면,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므로 결핍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라고 권고합니다.
한편,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 하버드대학교 교수와 심리학자 엘다 샤퍼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공동 저술한 <결핍의 경제학>에서는 결핍이 있을 때 그것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결핍감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해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결핍을 확인하는 순간, 하나에 몰입하면 다른 것은 무시해 버린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결핍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결핍이라는 환경에서 부가하는 정신적 고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결론에 가서는 느린 거북이가 자신의 결핍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나가게 하는 편익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렇게 결핍이나 고통을 두고 학계의 견해가 갈리는데, 정통학자들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면, 플라톤은 “결핍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채우려는 에너지를 제공한다.”라고 하였고, 욕구 단계이론을 주장한 매슬로나 빅터 프랑클도 결핍과 고통의 양면성을 거론합니다. 매슬로는 결핍은 충족되지 않은 상태의 불안정함이지만 충족하려는 행동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빅터 프랑클은 결핍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은 ‘의미 추구의 계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결핍이란 분명 자신의 약점이지만 그 약점을 인정하고 보완하려는 겸손과 노력이 전제된다면 결핍은 희망을 품고 있는 가능성이고 긍정적 섭취의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결핍과 고통을 자각한다면 더 나은 상태를 향한 창조와 사회적 기여의 계기가 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