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체는 없다. 오직 ‘너와 나’ 일 때의 ‘나’, ‘나와 그것’ 일 때의 ‘나’만 있을 뿐입니다. 결국 ‘나’는 ‘관계’ 속에서의 ‘나’ 일뿐입니다.”
‘나와 너’ 관계의 극단적인 전형으로 소크라테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대화를 나눈 사람입니다. 또 하나의 전형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너와 나’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는 종속성이 아니라 전체적입니다.
처음 로버트 퍼트넘과 제임스 콜먼이 제기하였고 한때 대전시정의 중요 가치였던 ‘사회적 자본’도 오직 ‘나’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 사회를 부유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회의 ‘사회적 자본’ 쇠퇴를 비꼬아 ‘나 홀로 볼링’하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혼자만 볼링을 한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그리고 나 홀로 볼링은 사회의 유대와 결속이 해체되고, 개인주의적 고립이 나날이 증가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회복시켜 성과 위주의 사고를 극복한다면 상실된 인간성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6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수요일 아침, 공동체의 회복을 염원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