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고집쟁이들'을 경계한다.

by 염홍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매년 1월 세계 민주주의 지수(EIU)를 발표합니다. 한국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는 전 세계 순위에서 16위에서 23위까지를 오르내리면서, ‘완전 민주주의(Full Democracy)’로 분류되어 왔지만, 금년 1월 발표된 민주화 지수에서는 32위를 차지하여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크게 하락하였습니다. 그것은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원인이었겠지요. 그러나 현재 의회, 행정부, 사법부 그리고 언론의 안정성 회복이 점차 이뤄짐으로써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한국은 완전 민주주의 복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념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래전에 슈미터(Philippe C. Schmitter)와 오도넬(Guillermo O’Donnell)이 공동연구 한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 이행 과정을 심도 있게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된 책도 번역해 출판한 바도 있지요. 그때 이분들이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치 행위자들에 대한 유형을 설명하면서 ‘민주적 고집쟁이들(Democratic Recalcitrants)’을 거론하였는데, 상당히 공감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화 진척을 위한 이행 과정에서 타협을 거부하고 이상적인 민주주의만을 고수하여 현실적 전환을 방해하는 세력을 비판적으로 가리킨 말입니다. 이 개념을 현시점에서도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민주적 고집쟁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당위적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민주적인 요소에 대해서 협상을 거부하는 동시에 너무 조급하고 너무 급진적인 단절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과정을 하나의 경기로 본다면 이들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너무 완벽한 민주적 가치의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적 가치라는 것은 게임 규칙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교착상태’와 ‘의견 차이’가 민주주의를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기 시작 전부터 완전한 합일 또는 무결점을 전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적 고집쟁이들’은 형식적 절차적 정당성만을 강조하며 정치적 타협이나 과정의 복잡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타협적인 극우세력은 물론이지만, 이들도 민주주의 실현을 늦추거나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는 타협과 설계 그리고 전략과 절차를 포함한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불완전함으로 간주하여 배척함으로써 민주주의 자체의 실현 가능성을 해치는 딜레마를 만든다는 것이 당시 필립 슈미터 등의 통찰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지 결과는 아닙니다. 이상적인 상태를 한 번에 달성하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실용적인 경로를 밟아야 합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타협이 민주주의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타락’으로 보는 시각은 위험합니다. 완전한 정의만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정의 실현을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슈미터가 지적한 ‘민주적 고집쟁이’는 지나친 이상주의가 현실의 민주화 과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경고적 개념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민주적 개혁 과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도 ‘민주적 고집쟁이들’의 이상주의가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 정치와의 균형도 도모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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