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는 작가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설령 그것이 긍정적인 평가라고 해도 그렇지요. 오늘 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인 정호승에 관해 쓰고 싶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이미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검증된 시인입니다. 정호승의 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쓰이지만, 그의 시에는 깊은 상징성과 울림을 주고 있지요. 그의 시와 산문을 읽어보면 그에게는 몇 개의 화두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사랑’ 그리고 ‘고통’이지요. 그는 시인이 된 결정적 역할을 한 분이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정호승 시인에게 “시는 슬플 때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지요. 그는 그 말에서 많은 상상력을 얻었고, 그의 말대로 고통이야말로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시는 인생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체념이 아닌 고통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방식이었지요. 따라서 그의 시는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고통의 방법”이라는 말을 하면서, 고통을 통해 삶이 풍부해지고 자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통제를 맞고 무고통을 통해 태어난 아기보다는 고통을 느끼며 정상 분만한 아기가 엄마 젖을 빠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지요.
정호승 시인은 ‘사랑은 고통이다’라고 썼는데 그의 시 <미안하다>를 보면 그 고통은 사랑과 연민의 역설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는 시에서는 사랑의 절대성과 무조건적인 헌신을 강조했지요. 그래서 정호승 시인의 시를 가리켜 “인간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연약함을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연민의 시, 인간을 위한 시를 지향한다”라고 했습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목요일 아침,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이라는 그의 대표적인 시 <수선화에게>를 읽으며 7월 하순의 어느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