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3권의 시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밀란 쿤데라의 유고시를 통해 체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곳에 설명한 바 있고, 어제는 한강 작가의 시를 읽고 간단한 감상을 적어보기도 하였습니다. 한강 작가는 언어와 한 몸이 되어 “언어의 타락을 앓고 있는 시인”이라고 지적하였지요. 말과 동거하는 인간으로서의 한강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강 작가는 “침묵의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자 그러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소설가”라고 묘사한 평론가의 말에 공감을 표하였습니다.
오늘은 문정희 시인의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는 시집을 소개할까 합니다. 문정희 시인은 이 책의 ‘시인의 말’에서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그냥 걸어왔습니다. 어떤 고난, 어떤 절망, 어떤 시대 가치 앞에서도 나는 문학이었습니다. 언어로 존재하고 언어로 사유하고 언어로 새로 태어나는, 실로 저주받고 실로 축복받은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꽃숨>이라는 시집을 출간하여 한국 최초 여고생 시집 출간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그때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제목을 짓고 서문을 썼다고 하지요. 그의 시집은 11개의 언어로 옮겨진 15권의 번역 시집이 있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지요.
오늘 저는 문정희 시인의 많은 시들 중에서 <러브호텔>을 골라 보았습니다. 이 시에서는 ‘러브호텔’, ‘교회’, ‘시인’을 등장시켜 각각 현실 속 기능과 상징적 의미가 다르게 설정되어 대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러브호텔’은 “육체적 욕망이 이루어지는 개인적 공간이나 상대는 정해져 있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는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교회’는 기도하고 울 수 있는 영적 공간이며 내면의 정화나 위안을 구할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작가는 “교회와 시인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라고 묻지요. 시인은 시를 끊임없이 쓰는 창작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시는 아주 드물다”라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요약하면 ‘러브호텔’은 즉물적 사랑을 욕망하지만, 그 속에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타인의 자유마저 허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교회’는 초월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그 ‘꿈’과 ‘노래’가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로 이어집니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진실을 찾고 만들어내려는 존재이지만 자주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만을 반복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문정희 시인은 욕망과 신앙, 창작 욕구가 모두 실현되지 못한 채 공존하는 지점에서 ‘고독’과 ‘쓸쓸함’이 형성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욕망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고, 끊임없는 신앙적 갈구를 조금씩 해소하고 실천할 수 있으며, 창작을 통해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가치와 의미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정희 시인처럼 모든 것이 ‘의문’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