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서의 한강 작가

by 염홍철


본격적인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2013년에 처음으로 펴낸 시집입니다. 한강 작가는 1993년에 시인으로 등단했으니까 20년 만에 첫 시집을 낸 것이지요. 160페이지에 불과한 시집이지만 장편 소설을 몇 권 읽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더 걸립니다. 시집의 제목처럼 ‘저녁’ 또는 ‘서랍’ 같은 일상적인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도 이 단순한 것들이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번 쭉 읽어가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올가을 내내 몇 번이고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집 안에 조연정 평론가가 한강 작가의 문학적 특징을 지적한 것이 있어, 그것을 중심으로 한강 작가의 시에 나타난 문학적 특징을 살펴볼까 합니다. 조연정 평론가는 한강 작가를 언어와 한 몸이 되어 “언어의 타락을 앓고 있는” 시인으로 설명했습니다. 언어 그 자체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몰두해 온 존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조연정 평론가는 “말과 동거하는 인간으로서의 한강”을, “침묵의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자, 그러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소설가”로 묘사했습니다. 즉 시에서는 암흑과 침묵의 정서를 그리는 근원적 시적 자아를, 소설에서는 그 시적 자아를 구현하는 서사적 자아를 각각 그려낸다는 해석인 것이지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소설가 한강과 시인 한강이 크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강 작가는 소설이든지 시든 지 절제된 언어를 통해 상실과 회복 같은 테마를 일관성 있게 유지한다는 점에서 소설이나 시가 달리 변하지 않고 두 장르에서 일관된 문학적 정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즉 시에서는 언어가 더 응축되고 상징적인 반면 소설에서는 상황과 인물의 내면이 좀 더 서사적으로 펼쳐나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정서적으로나 사유 방식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조연정 평론가는 한강 시 문학의 중심을 “언어를 통해 침묵과 고통을 응시하고, 그 속에서 언어와 영혼이 생겨나는 구원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언어와 고통, 침묵과 회복 사이에서 깊은 사유와 감정의 지점을 응시하는 매개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연어-영혼”이라고 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집의 두 번째 시 <새벽에 들은 노래>의 전문을 소개하겠습니다.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이제 다시는”


이렇게 한강 시인은 반쯤 죽은 언어의 넋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가만히 “입술을 다문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침묵으로 언어의 타락을 거절한 것이지요. 입술을 다물고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이라는 단순 반복을 통해 언어가 언어 그 자체로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 것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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